영조 때 탕평책을 이끈 좌의정, 호 장밀헌, 시호 충헌, 지신공파
| 생몰 | 1689 ~ 1746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여산 송씨 |
송인명(1689~1746)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산이며, 자는 성빈(聖賓), 호는 장밀헌(藏密軒), 시호는 충헌(忠憲)입니다. 여산 송씨 지신공파 계통에서 나온 인물로, 영조 때 탕평정치를 이끈 중심 인물의 한 사람입니다. 1719년(숙종 45)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예문관검열이 되었습니다.
영조가 즉위한 1724년 충청도관찰사에 임명된 뒤 동부승지, 대사간, 대사성, 호조참의, 평안도관찰사, 대사헌, 예조참판, 이조참판을 거쳤고, 이조판서·예조판서·우참찬·좌참찬·호조판서·홍문관제학·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했습니다. 1736년 우의정, 1740년 좌의정에 올랐으며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습니다.
그는 조현명과 함께 탕평책 추진의 선두에 서서 당쟁을 막고 질서를 바로잡는 데 힘썼다고 평가됩니다. 영조의 명으로 박사수와 함께 《감란록》을 편찬했고, 김재로·조현명과 함께 《속대전》 편찬의 감수에 이름이 오른 인물로도 소개됩니다. 같은 지신공파에서 송진명·송성명 형제도 높은 벼슬을 지냈다고 소개됩니다.
영조 초기 조정은 노론과 소론의 극심한 갈등 속에 있었습니다. 송인명은 소론계 인물인 조현명과 함께 양쪽의 균형을 맞추는 탕평 인사를 뒷받침했다고 평가되며, 이 점에서 그의 이름은 영조 치세의 정치 안정과 함께 거론됩니다.
묘소의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