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진 송씨(恩津 宋氏) — 우암 송시열·동춘당 송준길을 배출한 조선의 대표적 사림 명문으로, 대전 회덕을 중심으로 세거하며 사직공파·목사공파·정랑공파의 3대 계통으로 이어져 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우암 송시열·동춘당 송준길을 배출한 조선의 대표적 사림 명문으로, 대전 회덕을 중심으로 세거하며 사직공파·목사공파·정랑공파의 3대 계통으로 이어져 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은진 송씨 인구는 약 226,050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송씨라도 본관(은진)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목사공파, 정랑공파, 사직공파, 영천공파, 동춘당문정공파, 제월당문희공파, 사우당효정공파, 우암문정공파, 규암문충공파, 추파공파, 야은충현공파, 주부공파, 후암공파
목사공파는 목사공(牧使公) 송요년(宋遙年)을 파조로 합니다. 송요년은 회덕에 세거한 쌍청당(雙淸堂) 송유(宋愉)의 손자이자 송계사(宋繼祀)의 아들로, 아우 송순년의 정랑공파와 함께 은진 송씨의 중심 계통을 이룹니다.
조선 후기 예학의 대가로 문묘에 종사된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과 송규렴·송상기 부자가 이 파의 대표 인물입니다. 후대에 동춘당문정공파·제월당문희공파·사우당효정공파 등 여러 지파로 나뉘었습니다.
정랑공파는 정랑공(正郞公) 송순년(宋順年)을 파조로 하며, 송순년은 송계사의 아들로 목사공파 파조 송요년의 아우입니다.
노론의 영수로 문묘와 종묘에 배향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을 비롯해 을사사화 때 화를 입은 송인수(宋麟壽), 명종 때 판서를 지낸 송기수, 고종 때 좌의정에 오른 송근수, 송환기·송치규 등이 이 파에서 나왔습니다. 후대에 우암문정공파·규암문충공파 등 여러 지파로 갈라졌습니다.
사직공파는 쌍청당 송유의 아들 송계중(宋繼中)을 파조로 합니다. 송계중은 목사공파·정랑공파 파조들의 아버지인 송계사(宋繼祀)의 아우로, 사직공파는 은진 송씨의 3대 계통 가운데 하나입니다.
송계중의 아들 대에서 주부공파(송미년)와 장사랑공파(송호년)로 나뉘었습니다. 동지중추부사 송인수(宋仁壽), 임진왜란 원종공신 송응현·송걸 등이 이 계통의 인물이며, 장사랑공파 일부는 회덕에서 부산 동래로 옮겨 세거하였습니다.
영천공파는 은진 송씨 4세 송호(宋昈)를 파조로 하는 계파입니다. 쌍청당 송유의 후손에서 갈라진 사직공·목사공·정랑공 계열과는 별도로, 족보에서는 별보(別譜)로 정리되어 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오늘날 은진송씨 대종중이 정한 39개 파 가운데 하나로 올라 있습니다.
동춘당문정공파는 13세 송준길(宋浚吉)을 파조로 하는 목사공파의 지파입니다. 송준길은 호가 동춘당, 시호가 문정이며 문묘에 종사된 예학자로 전해집니다.
제월당문희공파는 14세 송규렴(宋奎濂)을 파조로 하는 목사공파의 지파입니다. 송규렴은 송준길·송시열에게 배운 문신으로 예조판서에 임명되었고, 아들 송상기 등이 이 계통에서 나왔습니다.
사우당효정공파는 13세 송국택(宋國澤)을 파조로 하는 목사공파의 지파로, 은진송씨대종중이 정한 파 가운데 하나로 소개됩니다. 파조의 사적은 자료에서 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우암문정공파는 14세 송시열(宋時烈)을 파조로 하는 정랑공파의 지파입니다. 송시열은 호가 우암, 시호가 문정이며 노론의 영수로 문묘·종묘에 배향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 송병선·송병순 형제 등이 이 계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규암문충공파는 11세 송인수(宋麟壽)를 파조로 하는 정랑공파의 지파입니다. 송인수는 호가 규암으로 대사헌 재임 중 1547년 사사되었다가 선조 대에 신원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추파공파는 11세 송기수(宋麒壽)를 파조로 하는 정랑공파의 지파입니다. 송기수는 호가 추파로 명종 때 판서를 지냈고 『추파집』을 남겼습니다.
야은충현공파는 14세 송시영(宋時瑛)을 파조로 하는 정랑공파의 지파로 소개됩니다. 파조의 사적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주부공파는 8세 송미년(宋彌年)을 파조로 하는 사직공파의 지파입니다. 사직공 송계중의 아들 대에서 장사랑공파(송호년)와 함께 갈라졌다고 전해집니다.
후암공파는 8세 송백년(宋百年)을 파조로 하는 계파로, 영천공파와 함께 사직·목사·정랑공 3대 계통 외의 파로 소개됩니다. 파조의 사적은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송시열(노론의 영수·조선 후기 주자학의 대학자), 송준길(예학의 대가·병조판서·문묘 종사), 송규렴(송시열·송준길의 문인·예조판서), 송상기(노론 중진·대제학·판서), 송인수(대사헌, 을사사화로 사사), 송기수(명종 때 판서), 송근수(고종 때 좌의정), 송환기(정조·순조 때 이조판서), 송치규(순조·헌종 때 학자), 송유(쌍청당 건립), 송병선(을사늑약에 항거해 자결한 유학자), 송병순(1912년 순국한 유학자), 송병조(임시정부 의정원 의장), 송몽규(윤동주의 동무·독립운동가), 송남헌(통일운동가), 송건호(한겨레 초대 사장), 송인상(재무부·부흥부 장관)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은진 송씨(恩津 宋氏)는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일대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족보 전승에 따르면 비조를 송미자계(宋微子啓), 도시조를 당나라에서 호부상서를 지냈다고 전해지는 송주은(宋柱殷)으로 모시고, 고려 때 판원사를 지내고 공을 세워 은진군에 봉해졌다는 송대원(宋大原)을 시조로 삼습니다. 시조 송대원의 증손 송명의(宋明誼)가 중시조로 받들어집니다. 시조·도시조의 구체적 사적은 족보 기록에 의존하므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은진은 백제 때 덕근군(德近郡)·가지내현이던 곳으로, 신라 경덕왕 때 덕은(德恩)과 시진(市津)으로 고쳐 불렸고 1018년 공주에 편입되었다가 조선 태조 때 두 현이 합쳐져 덕은현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세종 때 지명을 은진으로 고쳤고, 1895~96년 은진군이 되었으나 1913~14년 논산군에 병합되어 오늘날 은진면으로 남았다고 전해집니다. 개칭 연도는 자료마다 1419년 등으로 엇갈립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인구는 226,050명으로 집계됩니다(1985년 187,303명, 2000년 208,816명). 충북·충남 동남부, 대전, 경상도, 전북에 많고, 대전 대덕구 송촌동·오정동·읍내동·평촌동, 동구 소호동·마산동, 보은 삼승면, 금산 남이면, 옥천 이원면 등이 대표적 집성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기 여주, 전북 고창·장수, 경북 김천·경산 등과 경남 합천·남해 등에도 집성촌이 있고, 강원 회양과 평안·함경 일대에도 세거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송명의는 1362년(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해 사헌부 관직을 지냈고, 고려가 망하자 절의를 지켜 처가가 있는 회덕(현 대전)에 내려왔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손자 송유(宋愉)는 쌍청당(雙淸堂)을 짓고 송촌동에 터를 잡아 집안의 기반을 닦은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송유의 아들 대에서 송계사의 두 아들 송요년·송순년이 각각 목사공파와 정랑공파로, 송계중이 사직공파로 갈라졌습니다.
은진 송씨는 조선 시대 충청도를 대표하는 양반 가문이자 국반(國班)의 하나로 꼽히며, 문묘에 종사된 대현과 종묘에 배향된 공신을 낳았습니다. 16세기에는 송인수가 대사헌으로 있다가 양재역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1547년 사사되었고, 사촌 송기수는 명종 때 판서를 지냈습니다. 17세기에는 같은 문중의 송시열과 송준길이 김장생·김집의 학통을 이어 서인계 학자 집단의 중심이 되었고, 두 사람은 '양송(兩宋)'으로 불렸습니다. 송시열은 효종과 북벌을 논의하고 예송에서 남인과 맞섰으며 이후 노론의 영수로 받들렸고, 송준길은 예학과 청렴으로 이름을 얻어 1756년 두 사람 모두 문묘에 종사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18~19세기에도 송환기·송치규·송근수 등이 이어졌으며, 송근수는 고종 때 좌의정에 올랐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 우암의 후손 송병선은 1905년 을사늑약에 항거해 자결했고 아우 송병순은 1912년 순국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밖에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송병조, 윤동주의 동무로 후쿠오카에서 옥사한 송몽규, 해방 후 통일운동가 송남헌, 언론인 송건호, 경제 관료 송인상 등이 은진 송씨로 소개됩니다.
대종중이 정한 파는 39개로 소개됩니다. 크게 사직공파(7세 송계중), 목사공파(8세 송요년), 정랑공파(8세 송순년)의 3대 계통에 영천공파(4세 송호)·후암공파(8세 송백년)가 더해집니다. 목사공 계열에는 충순위공파·진사공파·청풍공파·승지공파·쌍계당공파·사우당효정공파·동춘당문정공파(송준길)·제월당문희공파(송규렴) 등이, 정랑공 계열에는 추파공파(송기수)·규암문충공파(송인수)·우암문정공파(송시열) 등이 있다고 합니다. 파의 수와 이름은 자료마다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학자·정치가로는 송시열·송준길·송규렴·송상기, 사화기의 송인수·송기수, 고종 대의 송근수가 대표적입니다. 현대 인물로는 송건호·송인상·송남헌 등이 있습니다.
대전 대덕구 송촌동에는 송유가 지은 쌍청당과 송준길의 별당 동춘당(보물 제209호)이 있고, 동구 가양동에는 송시열이 1683년 지은 남간정사(대전시 유형문화재 제4호)와 우암사적공원이 있습니다. 남간정사 맞은편에는 『송자대전』 목판을 보관한 장판각이 있다고 합니다. 문헌으로는 충청도 최초의 조리서로 알려진 『주식시의』와 동춘당 종가에 전해진 양조서 『우음제방』이 소개됩니다.
은진송씨 대종중이 종친 조직으로 알려져 있으며, 항렬은 대체로 대동항렬을 따르되 종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세 일(一)·환(煥), 20세 인(仁)·규(圭), 21세 노(老)·흠(欽), 22세 용(用)·수(洙), 23세 석(錫)·병(秉), 24세 영(永)·헌(憲) 등으로 이어지는 표가 알려져 있습니다. 정확한 항렬은 소속 파 종중에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송대원~쌍청당 송유·송준길·송시열은진 송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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