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헌 재임 중 을사사화로 사사된 신료·규암문충공파 파조
| 생몰 | 1499 ~ 1547 |
| 시대 | 조선 |
| 본관 | 은진 송씨 |
송인수는 은진 송씨 정랑공파 출신으로 자는 미수(眉叟), 호는 규암(圭菴)입니다. 김안로를 탄핵했다가 유배되었고, 대사헌에 올랐으나 양재역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1547년 사사되었다고 전해집니다.
1522년 문과에 급제해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홍문관 교리 등을 지냈습니다. 김안로의 등용에 반대하고 그를 탄핵했다가 미움을 사 경남 사천으로 유배되었고, 4년 뒤 복귀해 예조참의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병조참판을 거쳐 1541년 전라도 관찰사를 지냈고, 인종 즉위 후 대사헌이 되었습니다. 1547년 이기·윤원형의 모함으로 양재역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사사되었습니다.
선조 대에 신원되어 몰수되었던 가산을 돌려받았습니다. 송기수가 묘갈명을, 송시열이 시장(諡狀)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계통은 규암문충공파로 불리며, 11세 송인수를 파조로 합니다. 사직공파의 동명 인물 송인수(宋仁壽)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외손자가 문장가 신흠이며, 송기수와는 사촌, 송시열의 종증조부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