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학의 대가·효종 때 병조판서(문묘 종사), 동춘당
| 생몰 | 1606 ~ 1672 |
| 시대 | 조선 |
| 본관 | 은진 송씨 |
송준길은 은진 송씨 목사공파 출신의 학자로, 호는 동춘당(同春堂), 시호는 문정(文正)입니다. 송시열과 함께 '양송(兩宋)'으로 불리며 효종 때 대사헌·이조판서·병조판서를 지냈다고 전해집니다.
송준길(1606~1672)은 자가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이며 아버지는 송이창으로 전해집니다. 김장생·김집에게 배웠고, 송시열과는 친척이자 동문 사이였습니다. 두 사람은 서인계 학자 집단의 중심으로, 훗날 노론으로 이어지는 학맥을 이루었습니다.
효종 즉위 후 김집의 천거로 조정에 나아갔으며, 사헌부 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지냈습니다. 송시열과 함께 북벌론을 뒷받침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병조판서 재직 등 세부 연도는 자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1659년 제1차 예송(기해예송)에서는 송시열과 함께 자의대비의 기년복을 지지했습니다. 한편 남인에 대한 지나친 처벌에는 반대하여 윤선도의 형을 감해 달라고 청한 일이 알려져 있어, 송시열에 비해 온건했다는 평이 있습니다.
대전 송촌동의 별당 동춘당은 아버지 송이창이 지은 건물을 송준길이 1643년 지금 자리로 옮겨 지은 것이라고 안내됩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대청과 온돌방을 한 공간으로 쓸 수 있고, 별도의 굴뚝이 없는 것이 특징으로 꼽힙니다. 현판 글씨는 송시열이 1678년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고, 1963년 보물 제20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저서로 『동춘당집』과 『어록해』가 있습니다. 1681년 숭현서원에 제향되었고 문정의 시호를 받았으며, 1756년 문묘에 종사되었습니다. 사위 민유중의 딸이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라고 전해집니다.
송준길은 예학에 밝고 청렴하며 학자로서의 덕망이 높았다고 평가되며, 같은 시기의 송시열과 함께 서인·노론 학맥의 큰 기둥으로 꼽힙니다. 후손 가문은 대전 회덕을 중심으로 이어졌습니다.
대전 대덕구 송촌동에 별당 동춘당(보물 제209호)이 있습니다.
같은 목사공파의 후학으로 송규렴·송상기 등이 이어졌고, 사위 민유중의 딸이 인현왕후라고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