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의 문인으로 영조 때 경연에서 실학을 강조한 학자, 호는 덕촌
| 생몰 | 1665 ~ 1742 |
| 시대 | 조선 |
| 본관 | 제주 양씨 |
양득중(1665~1742)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호는 덕촌입니다. 박태초에게 배운 뒤 윤증의 문인이 되었고, 1703년 공주 덕촌으로 옮겨 스승을 가까이 모셨다고 합니다.
지평·장령·집의를 지냈고 1734년 영조 때 경연참찬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허울을 버리고 실질을 힘쓰자는 무실의 학풍을 강조했으며, 유형원의 『반계수록』 간행을 청했다고 전합니다.
17세에 박태초에게 배우고 뒤에 윤증의 문인이 되었습니다. 40세 무렵 정식으로 사제의 예를 갖추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윤증은 그를 아껴 무실적인 학문으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1703년 공주의 덕촌으로 이사해 스승 윤증을 가까이 모시며 학문에 힘썼고, 이를 따라 호를 덕촌이라 했습니다.
지평·장령·집의를 거쳤습니다. 1729년 장령으로 있을 때 산림 출신 박필주와의 일로 파직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734년 영조 때 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에 임명되어 경연에서 실질을 강조했다고 전해집니다. 실사구시를 강조한 학자로 이름이 있으나, 발언의 구체적 내용은 확인이 필요합니다.
유형원의 『반계수록』을 높이 평가해 간행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고 전해져, 초기 실학 계통과 연결해 이해됩니다.
『덕촌집』은 아들 양순해가 편집하고 외증손 윤인기가 1806년에 간행했습니다. 10권 5책 활자본으로, 성리학·경학에 관한 사우 간 논변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묘소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양팽손의 6대손으로 전하며, 아들 양순해가 문집을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