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의병장,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 (시호 충민)
| 생몰 | 1561 ~ 1593 |
| 시대 | 조선 |
| 본관 | 제주 양씨 |
양산숙(1561~1593)은 양응정의 아들로 전해지며 자는 회원, 시호는 충민입니다. 성혼의 문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김천일의 휘하에서 활약했고, 선조에게 호남·영남의 사정을 알린 공으로 1592년 공조좌랑에 제수되었습니다.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김천일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졌다고 합니다.
양팽손의 손자이자 양응정의 아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일부 자료는 양산룡·양산숙을 양응정의 형 양응태의 아들로 적어 차이가 있습니다. 성혼의 문인이었다고 합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주에서 의병을 모아 김천일 휘하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김천일과 함께 북상해 수원 등지에서 활동했고, 강화로 옮길 무렵 선조에게 호남·영남의 전황을 보고했다고 합니다. 이 공으로 1592년 공조좌랑에 제수되었습니다.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끝까지 싸우다 김천일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졌다고 전해집니다.
좌승지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민입니다. 나주 정렬사와 진주 창렬사에 제향되었습니다.
양산숙은 형제와 함께 임진왜란에 순절한 호남 의병 가문의 사례로 거론됩니다. 형제 모두의 행적과 시기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시신을 찾지 못한 순절이어서 정확한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광주 양송천 묘역에 가족과 함께 기려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양팽손의 손자, 양응정의 아들로 전하며 형제 양산룡·양산수도 임진왜란에 순절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