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양씨(濟州 梁氏) — 탐라 개국신화의 양을나를 시조로 한다고 전하는, 양씨의 오랜 본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탐라 개국신화의 양을나를 시조로 한다고 전하는, 양씨의 오랜 본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제주 양씨 인구는 약 142,211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양씨라도 본관(제주)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제주 양씨(濟州 梁氏)는 2015년 인구조사에서 약 14만 2천 명으로, 탐라 개국 신화의 세 신인 가운데 맏이인 양을나(良乙那)를 시조로 모시는 성씨입니다. 남원 양씨·나주 양씨·충주 양씨 등 여러 양씨 본관이 제주 양씨에서 갈라진 분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호남 사림의 학포 양팽손과 소쇄옹 양산보를 낸 집안으로도 이름이 높습니다.
『고려사』에 인용된 옛 기록에 따르면, 한라산 북쪽 기슭의 모흥혈(毛興穴)에서 세 신인이 솟아났습니다. 맏이가 양을나, 둘째가 고을나, 셋째가 부을나이며, 이들이 벽랑국의 세 공주를 맞아 탐라를 열었다고 합니다. 양을나의 성은 본래 '良'이었으나 뒤에 '梁'으로 바꾸어 썼다고 합니다. 삼성혈 신화에서 양을나는 첫 번째 도읍인 제일도(第一都)에 자리 잡았다고 전합니다.
문중에서는 시조의 후손 양탕(梁宕)이 신라 진흥왕 때 사신으로 가서 양(梁)이라는 성을 받았다고 전합니다. 또 중시조 양순(梁洵)이 신라 신문왕 때 신라에 들어가 한림학사를 지내고 한라군(漢拏君)에 봉해졌다고 합니다. 다만 이 시기의 기록은 족보 전승에 기대는 부분이 많습니다.
삼성의 순서를 두고는 문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삼국유사』·『고려사』·『세종실록지리지』·『동국통감』 등은 '양·고·부'의 순서로 적었고, 『영주지』·『탐라지』 등은 '고·양·부'로 적었습니다. 1703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양을나를 첫째로 하여 위패 순서를 정한 이후로는 대체로 양·고·부의 순서를 따릅니다.
고려 이후의 세계는 양보숭(梁保崇)을 기세조로 하는 유격공파와 양구미를 기세조로 하는 성주공파의 두 갈래로 정리됩니다. 유격공파 아래에는 서두봉관파(2세 양희)·금성군파(5세 양동재)·교리공파(9세 양처공)·부사공파·사직공파·혜강공파(11세 양팽손)·주부공파·소쇄원공파(12세 양산보)·학해공파 등 여러 소파가 있습니다. 성주공파는 12세 대에서 사직공파·천호공파·중랑장공파로 나뉩니다.
조선 중기에 제주 양씨는 호남 사림의 중심에 섰습니다. 능주 출신의 양팽손은 1519년 기묘사화 때 조광조를 변호하다 벼슬에서 물러났습니다. 조광조의 제자 양산보는 스승이 화를 입자 담양에 소쇄원을 짓고 은거했습니다. 양팽손의 아들 양응정은 선조 때 '8문장'으로 꼽힌 문장가로, 정철·백광훈·최경창 등을 가르쳤습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양응정의 아들 양산룡·양산숙·양산수 형제가 순절했습니다. 특히 양산숙은 김천일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진주성에서 끝까지 싸우다 남강에 몸을 던졌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양팽손의 6대손 양득중이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강조한 학자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대한제국기에는 양회일이 능주·화순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일제강점기에는 양한묵이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습니다. 조선 시대 문과 급제자는 14명, 무과 급제자는 20명이라는 집계가 있습니다.
제주시의 삼성혈(三姓穴)은 고·양·부 삼성의 발상지로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삼성전에서는 매년 4월 10일과 10월 10일에 춘추대제를, 12월 10일에 건시대제를 지냅니다.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의 혼인지(婚姻池)는 삼신인이 벽랑국 세 공주와 혼례를 올린 곳으로 전합니다.
육지의 대표 유적은 대부분 전라남도와 광주에 있습니다. 담양의 소쇄원(瀟灑園)은 양산보가 가꾼 별서정원으로,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화순 능주에는 양팽손이 독서하던 학포당과 그를 배향한 죽수서원이 있습니다. 광주 광산구 동호동의 양송천 묘역에는 양응정과 임진왜란 때 순절한 세 아들, 손자 양만용의 묘가 함께 있습니다. 이 묘역은 1978년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양산숙은 나주 정렬사와 진주 창렬사에 제향되었습니다.
오늘날 집성촌은 광주 광산구, 전남 화순·보성·나주·영광·함평·진도·완도 등 호남 일대에 많습니다. 제주에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등에 모여 삽니다.
계파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유격공파, 성주공파, 혜강공파, 소쇄원공파, 서두봉관파, 금성군파, 교리공파, 부사공파, 사직공파(유격공파계), 직장공파, 현령공파, 주부공파, 학해공파, 천호공파, 중랑장공파, 사직공파(성주공파계)
유격공파는 양보숭(梁保崇)을 기세조로 하는 제주 양씨의 큰 갈래입니다. 고려 이후의 세계가 이 계열과 성주공파의 두 갈래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위키백과의 파 목록에는 이 아래에 서두봉관파(2세 양희)·금성군파(5세 양동재)·교리공파(9세 양처공)·부사공파(10세 양윤조)·사직공파(10세 양윤신)·직장공파(11세 양서석)·현령공파(11세 양균석)·주부공파(11세 양승조)·혜강공파(11세 양팽손)·소쇄원공파(12세 양산보)·학해공파(13세 양은휘) 등이 올라 있습니다. 광주·전남 일대에 집성촌이 많습니다.
대수는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문중 족보로 확인하세요.
성주공파는 양구미를 기세조로 하는 제주 양씨의 또 다른 큰 갈래입니다(구미의 한자는 具美로 쓴 자료와 龜美로 쓴 자료가 있습니다). 12세 대에서 양유침(사직공파)·양중덕(천호공파)·양홍(중랑장공파)으로 나뉩니다. '성주(星主)'는 탐라 시대 토착 수장에게 내려진 칭호로 알려져 있습니다.
혜강공파는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 1488~1545)을 파조로 하며, 유격공파 아래의 소파입니다. 양팽손은 능성 출신으로 홍문관 교리 등을 지냈으나, 1519년 기묘사화 때 조광조·김정 등을 위해 상소했다가 파직되어 고향 능주로 돌아가 학포당에서 독서로 지냈습니다.
시호는 혜강(惠康)이며 능주 죽수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문장가 양응정이 그의 셋째 아들입니다.
소쇄원공파는 소쇄옹(瀟灑翁) 양산보(梁山甫, 1503~1557)를 파조로 하며, 유격공파 아래의 소파입니다. 양산보는 열다섯 살에 조광조의 문하에서 배웠으나, 1519년 기묘사화로 스승이 유배되어 죽자 벼슬을 단념했습니다.
무등산 아래 담양에 별서정원 소쇄원을 짓고 은거했으며, 여러 차례 출사 권유에도 끝내 나가지 않았습니다. 소쇄원은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유격공파 아래의 소파로, 위키백과의 파 목록에는 2세 양희(梁禧)가 파조로 올라 있습니다. 한자 표기와 세부 계통은 문중 족보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유격공파 아래의 소파로, 5세 양동재를 파조로 합니다. '금성'은 나주의 옛 이름으로 알려져 있어 호남 지역과의 연관이 짐작되지만, 구체적인 봉작 경위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유격공파 아래의 소파로, 9세 양처공을 파조로 합니다. 파명은 홍문관 교리 등의 벼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나 자세한 사적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유격공파 아래의 소파로, 10세 양윤조를 파조로 합니다.
유격공파 아래의 소파로, 10세 양윤신을 파조로 합니다. 성주공파 쪽에도 같은 이름의 사직공파(12세 양유침)가 있어 서로 다른 계통이니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유격공파 아래의 소파로, 11세 양서석을 파조로 합니다.
유격공파 아래의 소파로, 11세 양균석을 파조로 합니다.
유격공파 아래의 소파로, 11세 양승조를 파조로 합니다.
유격공파 아래의 소파로, 13세 양은휘를 파조로 한다고 정리되어 있으나 출처 문서의 해당 항목이 중간에 끊겨 있어 확인이 필요합니다.
성주공파 아래의 소파로, 12세 양중덕을 파조로 합니다.
성주공파 아래의 소파로, 12세 양홍을 파조로 합니다. 파명은 고려의 무관직 중랑장에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
성주공파 아래의 소파로, 12세 양유침을 파조로 합니다. 유격공파계의 사직공파(10세 양윤신)와는 다른 계통입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양을나(탐라 삼성 신화의 시조), 양순(중시조·한라군 봉작 전승), 양팽손(기묘명현·학포·화가), 양산보(소쇄원 조성), 양응정(선조 때 8문장·송천집), 양산숙(임진왜란 의병·진주성 순절), 양득중(윤증 문인·실학자·덕촌), 양회일(한말 의병장), 양한묵(3·1운동 민족대표 33인), 양회경(대법관), 양재봉(대신증권 창업자), 양용은(2009 PGA 챔피언십 우승 골퍼), 양방언(작곡가·피아니스트)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제주시 이도일동의 삼성혈(三姓穴)은 1964년 6월 10일 사적 제13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고을나·양을나·부을나 삼신인이 솟아났다고 전하는 세 개의 구멍이 있는 곳이며, 삼성시조의 위패를 모신 삼성전은 1698년 제주목사 류한명이 세웠다고 합니다. 이 밖에 1771년 건립된 전사청, 1849년 건립된 숭보당이 있습니다.
1526년 제주목사 이수동이 표단과 홍문을 세우고 봄·가을에 제사를 올리게 한 것이 제향 정비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은 4월 10일 춘기대제, 10월 10일 추기대제를 후손들이 봉행하고, 12월 10일 건시대제는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초헌관을 맡는 도민제로 지낸다고 안내됩니다. 기관별 안내에 따라 제향 장소와 표현이 조금씩 다르니 행사 전에는 삼성혈 관리처에 확인하세요.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의 혼인지는 삼신인이 바다에서 떠밀려온 나무상자 속의 벽랑국 세 공주를 맞아 혼례를 올린 연못으로 전해집니다. 제주시 화북동의 삼사석(三射石)은 삼신인과 관련된 전승이 깃든 유적으로 소개되며, 삼사석비가 따로 있습니다. 모두 신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이므로 '전해진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양씨종친회총본부는 1967년 제주양씨종친회로 출발해 1989년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 하며,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 사당·역사관·전사청 등을 갖추고 매년 4월 11일 제향을 올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전화 064-751-0811~2). 이와 별도로 위키백과에는 '제주양씨 한라군계 종부정공 대종회'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호남에는 학포공파대종회(화순 학포선생 부조묘, 1631년 연대·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7호)와 송석정종회(화순 이양면 송석정,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27호), 삼지제종중(화순 도곡면 삼지재, 제15호)처럼 파·가계별 종중 조직과 유적도 있습니다. 2025년에는 제주·남원·충주 양씨 지파회장들이 梁氏 중앙종친회 통합을 논의했다는 보도·기술이 있으나 진행 상황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위키백과가 소개하는 집계로 제주 양씨는 1985년 113,442명, 2000년 133,355명, 2015년 142,211명으로 늘었습니다. 남원 양씨·나주 양씨·충주 양씨는 제주 양씨에서 갈라진 분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주 양씨 전체에 공통되는 항렬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파와 문중마다 따로 정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집안 족보나 문중에 문의하세요.
제주 양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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