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인으로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 호는 지강
| 생몰 | 1862 ~ 1919 |
| 시대 | 일제강점기 |
| 본관 | 제주 양씨 |
양한묵(1862~1919)은 전남 해남 출신의 천도교인이자 독립운동가로, 호는 지강입니다. 헌정연구회와 대한자강회 등에서 계몽 활동을 했고, 천도교에 입교해 교리 저술과 교육 사업에 힘썼습니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으로 독립선언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사했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전남 해남의 양반 가문 출신으로, 지방 세무 관리를 지냈다가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베이징과 일본을 다니던 중 손병희 등을 만나 천도교에 입교했다고 전합니다.
일진회가 친일로 돌아서자 이준·윤효정 등과 공진회, 헌정연구회를 조직했습니다. 헌정연구회는 입헌군주제를 주장했고 뒤에 대한자강회로 이어졌습니다.
1909년 천도교 법도사에 임명되어 교리서 약 20권을 저술했고, 그중 『대종정의』에서 인내천이라는 말을 처음 썼다고 합니다. 보성전문학교·보성중학교·동덕여학교 등의 운영에도 참여했습니다.
1919년 민족대표 33인으로 독립선언식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었고, 서대문감옥에서 재판을 받던 중 고문으로 숨졌다고 전해지며 33인 가운데 옥중에서 사망한 유일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고, 유해는 1922년 화순에 반장되었다고 합니다.
유해는 1922년 천도교단의 주선으로 전남 화순에 반장되었다고 합니다.
자손에 관해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