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 삼성 신화의 맏이이자 제주 양씨의 시조
| 시대 | 탐라 |
| 본관 | 제주 양씨 |
양을나는 고을나·부을나와 함께 한라산 북쪽 기슭의 모흥혈에서 솟아났다고 전하는 탐라의 세 신인 가운데 맏이로, 제주 양씨가 시조로 모십니다. 신화 속 인물이어서 생몰 연대는 전하지 않습니다.
세 신인은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를 맞아 혼인하고 오곡의 씨앗과 가축으로 농사를 시작해 탐라를 열었다고 합니다. 양을나의 성은 본래 良이었다가 뒤에 梁으로 바뀌었다고 전합니다.
『고려사』에 인용된 옛 기록에 따르면 한라산 북쪽 기슭의 세 구멍에서 세 신인이 솟아났고, 맏이가 양을나, 둘째가 고을나, 셋째가 부을나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사냥으로 살다가 동쪽 바닷가에서 목함을 타고 온 벽랑국 세 공주를 만나 혼인하고 오곡과 송아지·망아지를 얻어 농경을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신화이므로 역사적 사실과는 구분해서 보아야 합니다.
삼성의 순서는 문헌마다 다릅니다. 『삼국유사』·『고려사』·『세종실록지리지』 등은 양·고·부로, 『영주지』·『탐라지』 등은 고·양·부로 적었습니다. 1703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삼성사 위패 순서를 양을나 첫째로 정한 뒤로는 대체로 양·고·부를 따릅니다. 신화에서 양을나는 첫 번째 도읍인 제일도에 자리 잡았다고 전합니다.
제주시의 삼성혈은 세 신인이 솟아난 곳으로 전해지며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526년 이수동 목사가 돌담을 두르고 비석을 세워 제사를 시작했고, 1698년에는 삼을나묘(지금의 삼성전)를 세웠다고 합니다. 오늘날 삼성전에서는 매년 4월 10일과 10월 10일에 춘추대제를, 12월 10일에 건시대제를 지냅니다.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의 혼인지는 삼신인이 벽랑국 공주들과 혼례를 올린 곳으로 전합니다. 또 세 신인이 활을 쏘아 살 곳을 정했다는 삼사석(三射石) 이야기가 전하며, 1735년 제주목사 김정이 세운 삼사석비가 1997년에 발굴되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구체적 전승은 자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제주 양씨는 양을나를 시조로 모시고, 문중 전승으로는 후손 양탕이 559년경 신라에 사신으로 가서 梁씨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 시기의 계보는 족보 전승에 기대는 부분이 커서 사료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고려 이후 세계는 양보숭(유격공파)과 양구미(성주공파)를 기세조로 정리됩니다.
고유한 묘소는 전하지 않으며, 제주시 삼성혈(모흥혈)이 삼성의 발상지로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제주 양씨의 시조이며, 남원·나주·충주 양씨 등 여러 양씨 본관이 제주 양씨에서 갈라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