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팽손 梁彭孫

기묘사화 때 조광조를 변호한 기묘명현·화가, 호는 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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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488 ~ 1545
시대조선
본관제주 양씨

생애 약력

양팽손(1488~1545)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화가로, 자는 대춘, 호는 학포, 시호는 혜강입니다. 1516년 식년 문과에 급제해 현량과를 거쳐 정언·교리 등을 지냈습니다.

1519년 기묘사화 때 조광조와 김정을 위한 상소를 이끌다 삭직되었고, 고향 능주로 내려가 학포당에서 독서하며 지냈습니다. 산수화에 뛰어나 중종 대 산수화풍을 대표하는 화가로 평가됩니다.

출신과 급제

양팽손은 전남 능주 출신으로 1510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516년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했다고 합니다. 현량과로 뽑혀 정언·수찬·교리 등을 지냈고 호당에 들어 사가독서도 했습니다. 생년은 1488년으로 적는 자료가 많으나 1480년으로 적은 곳도 있어 차이가 있습니다.

조광조와의 관계

양팽손은 조광조의 가까운 벗이었습니다. 조광조가 능주로 유배되었을 때 매일 경전의 뜻을 함께 논했다고 전합니다.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죽자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화순 쌍봉 일대에 묻었다는 설명도 있으나 이장 여부 등은 자료마다 다릅니다.

기묘사화와 삭직

1519년 기묘사화 때 조광조와 김정을 구하기 위한 상소에서 대표를 맡았다가 벼슬에서 쫓겨났습니다. 앞서 정언으로 있을 때 이성언 탄핵과 관련해 직책이 바뀐 일이 있었으나, 신진 사류에게는 언론을 지킨 인물로 평가받았다고 합니다.

학포당과 능주 은거

삭직된 뒤 능주 쌍봉리에 학포당을 짓고 독서하며 지냈고, 같은 처지의 기묘명현들과 교유했습니다. 조광조 사후에는 다시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용담현령을 지냈다는 기록도 있어 시기와 성격은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서화와 문학

글씨와 산수화에 뛰어났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산수도〉, 개인 소장 〈춘강계칙도〉, 일본 다이겐사의 〈소상팔경〉 등이 그의 작품으로 전해집니다. 작품의 귀속에는 학계의 논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죽수서원과 평가

1570년 화순 능주에 죽수서원이 세워져 조광조와 양팽손을 배향했고, 이후 사액을 받았다고 합니다. 양팽손은 호남 사림의 중심 인물로, 제주 양씨가 호남 명문으로 자리 잡는 계기를 만든 인물로 평가됩니다.

가족과 후손

아들 가운데 양응정은 8문장으로 이름났고, 손자 양산숙은 임진왜란에 순절했습니다. 후손 양득중(6대손)은 조선 후기 학자로 알려졌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혜강공파는 유격공파 아래 소파입니다.

묘소

전남 화순 일대에 묘소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화순 능주에 학포당이 있고 죽수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후손

셋째 아들 양응정은 선조 때 8문장으로 꼽혔고, 손자 대에 임진왜란 의병 양산숙 등이 나왔다고 전합니다. 6대손 양득중은 실학적 학문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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