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양씨의 중시조(신라 한림학사·한라군 봉작 전승)
| 시대 | 신라 |
| 본관 | 제주 양씨 |
양순은 제주 양씨의 중시조로 모셔지는 인물입니다. 족보 전승에 따르면 682년 신라 신문왕 때 신라에 들어가 한림학사를 지내고 한라군에 봉해졌다고 합니다.
이 시기의 행적은 문중 족보에 주로 전하며 독립된 사료로 확인되지는 않아, 확정된 사실보다 전승으로 이해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제주 양씨에서 양순은 탐라 건국 신화의 시조 양을나와 고려 이후 기세조들을 이어 주는 중시조로 모셔집니다. 시조에서 중시조까지의 계보는 문헌 기록이 거의 없어 족보 전승에 기댑니다.
족보에는 682년 신문왕 때 신라에 들어가 한림학사를 지냈다고 적혀 있습니다. 한림학사라는 직명이 당시 신라 관제에 그대로 있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워, 후대 기록의 표현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양순은 한라군에 봉해졌다고 전합니다. 이는 탐라(제주)의 한라산에서 이름을 딴 봉작으로 이해되며, 제주 출신 가문이 신라와 맺은 관계를 보여 주는 전승으로 읽힙니다.
같은 전승에서 후손 양탕은 559년 신라 진흥왕 때 사신으로 가서 梁이라는 성을 받았다고 합니다. 양을나의 성이 본래 良이었다가 梁으로 바뀐 것과 연결되는 이야기이지만, 연대는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고려 이후 제주 양씨는 양보숭을 기세조로 하는 유격공파와 양구미를 기세조로 하는 성주공파로 나뉩니다. 유격공파 아래에 혜강공파(양팽손)와 소쇄원공파(양산보) 등 여러 소파가 있습니다.
묘소는 전하지 않습니다.
이후 세계는 고려의 양보숭(유격공파 기세조)과 양구미(성주공파 기세조)로 이어지는 것으로 정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