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승익 廉承益

고려 충렬왕 때 세도를 누린 총신, 흥법좌리공신, 도첨의중찬, 염제신의 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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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302
시대고려 후기
본관파주 염씨

생애 약력

염승익(廉承益, ?~1302)은 고려 충렬왕 때의 관료로 본관은 파주이며 처음 이름은 염유직(廉惟直)이었다고 합니다. 위키백과는 원 간섭기에 세족으로 성장한 염순언(廉純彦)의 둘째 아들로 적고, 파주 염씨 위키백과 항목은 염수장의 손자로 설명하는 등 세계가 자료마다 달라 정확한 계보는 족보로 확인해야 합니다. 후손 염제신의 조부가 됩니다.

이지저(李之氐)의 천거로 충렬왕의 총애를 얻었고, 1280년 승지로서 왕명을 받아 현화사의 불전을 짓는 일을 맡았다고 합니다. 1283년에는 일연을 국사로 모시는 일에 관여했다고도 전합니다. 1287년 첨의평리에 임명되고 얼마 뒤 지도첨의사사가 되었으며, 1291년 판판도사와 판감찰사사를 지냈습니다. 1293년에는 왕과 공주(제국대장공주)를 따라 원나라를 다녀왔습니다. 1295년 병을 이유로 사직했습니다.

1302년에는 흥법좌리공신에 봉해졌고, 도첨의중찬(재상)으로 치사했습니다. 종친회 자료는 이후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다고 적습니다. 당시 총신으로서 권세를 누렸다는 서술은 있으나 ‘간신’ 같은 평가를 명시한 자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가문은 이후 손자 염제신 대에 다시 크게 일어나 공민왕 대의 명문이 되었다는 점에서 파주 염씨 중흥 이전의 중요한 인물로 소개됩니다. 근거는 주로 『고려사』 권123 열전입니다.

위키백과 ‘염승익’ 항목은 염순언의 둘째 아들로, ‘파주 염씨’ 항목은 염수장(1214년 급제)의 손자로 설명합니다. 두 설명이 모두 가능한지, 혹은 하나가 틀린지는 이번 자료로 판단할 수 없으니 ‘자료마다 다르다’고만 적습니다. 파주 염씨 상계는 염형명 → 염위 → 염가칭 → 염현 → 염한 → 염덕방(6세) → 염신약(7세) 순으로 정리됩니다.

일연 국사와의 인연

종친회 자료는 1283년 일연을 국사로 모시는 일에 염승익이 관여했다고 전합니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쓴 승려로 알려져 있으며, 이 기록을 통해 염승익이 왕실의 불교 행사에 가까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구체적 역할은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묘소

묘소는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염승익 자주 묻는 질문

염승익과 염제신은 어떤 관계인가요?

염제신의 조부입니다.

염승익은 어떤 공신인가요?

1302년 흥법좌리공신에 봉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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