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염씨 족보·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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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염씨(坡州 廉氏) — 고려 개국공신 염형명을 시조로 하고 중시조 염제신 대에 크게 일어난 염씨의 대표 본관으로, 염씨 대부분이 이 본관이라고 전해집니다.

인구 — 약 57,531명 (2015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파주 염씨란

고려 개국공신 염형명을 시조로 하고 중시조 염제신 대에 크게 일어난 염씨의 대표 본관으로, 염씨 대부분이 이 본관이라고 전해집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파주 염씨 인구는 약 57,531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염씨라도 본관(파주)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파주 염씨의 뿌리와 역사

파주 염씨(坡州 廉氏)는 경기도 파주시를 본관으로 하며, 염씨(廉氏)의 거의 대부분을 이루는 본관입니다. 위키백과는 2015년 통계청 조사에서 파주 염씨 57,531명에 파평 염씨 5,515명, 서원 염씨 205명, 곡성 염씨 99명을 더한 63,350명을 같은 계열로 정리하고, 염(廉)씨 전체는 69,387명으로 소개합니다. 다른 본관으로는 용담 염씨(2,715명)가 따로 집계됩니다. 종친회와 지역 신문 자료는 개성·광주·양주·충주 등 70여 본이 모두 파주 염씨의 세거지명이거나 조상의 유업지일 뿐 단일본이라고 설명합니다. 다만 이 주장이 학술적으로 검증되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시조 염형명과 득성의 이야기

시조 염형명(廉邢明)은 고려 태조 때 사도(司徒)를 지내고 삼한벽상공신에 책록되었다고 합니다. 종친회 자료는 그가 중국에서 호조판서를 지내다 신라 말의 혼란을 피해 봉성(지금의 파주)에 자리 잡았다고 전하지만, 이는 가문의 전승이므로 사실과 구분해 읽는 것이 좋습니다. 한국 염씨의 더 먼 기원으로는 마한의 소국 염사(廉斯)의 우거수 염사치(염사착)를 득성조로 보는 설이 있습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인용된 『위략』은 그가 낙랑군에 귀화해 전택을 받았다고 적고, 『후한서』는 건무 연간에 염사 사람 소마시가 광무제에게 내헌해 읍군에 봉해졌다고 전합니다. 한편 조선 선조 때 조여적의 『청학집』은 염씨가 대방국(황해도·경기 서북부 일대)에서 나왔다고 하여 기원 설명은 하나로 모이지 않습니다.

고려의 명문에서 중시조 염제신까지

시조 이후의 세계는 염위, 염가칭, 염현, 염한을 거쳐 6세 염덕방으로 이어진다고 정리됩니다. 7세 염신약은 정당문학·예부상서에 올라 문벌 귀족으로의 성장을 열었고, 충렬왕 때에는 염승익이 흥법좌리공신·도첨의중찬이 되어 세도를 누렸습니다. 고려 초에는 개국 이등공신 염상의 이름도 보입니다. 가문을 다시 일으킨 사람은 중시조 염제신(1304~1382)입니다. 원나라에서 수학하고 공민왕 때 문하시중에 올라 곡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공민왕이 직접 그렸다고 전하는 그의 초상은 보물 제109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딸 신비 염씨는 공민왕의 후비가 되었고, 세 아들 염국보·염흥방·염정수는 각각 국파공파·동정공파·청강공파의 파조가 되었습니다.

1388년의 무진피화와 가문의 분산

그러나 염제신 사후 6년인 1388년, 염흥방이 이인임·임견미 일파와 함께 토지를 빼앗고 조반을 모함한 일이 드러나 최영·이성계 일파에게 숙청되었고, 염정수 등 형제와 친인척이 화를 입었습니다. 이 무진피화로 가문은 급격히 쇠잔했고, 조선 전기에는 한동안 인물을 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나무위키는 고려에 대한 충정을 버리지 않아 조선 조정에서 입지가 좁아졌다는 해석도 소개합니다. 후손들은 상주·풍덕·보성·나주·임실 등지로 흩어졌다고 전해집니다.

임진왜란 이후의 부활

가문이 다시 이름을 알린 계기는 임진왜란(정유재란)이었습니다. 염걸·염서·염경·염홍립 부자형제가 강진에서 의병을 일으켜 이순신 휘하에서 싸우다 순절해 ‘4충’으로 불렸고, 염말경·염언상 등도 의병으로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 등에 추서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철종의 생모 용성부대부인 염씨가 용담 염씨 출신으로 전하며, 근현대에는 소설가 염상섭, 추기경 염수정, 교육자 염재호, 정치인 염태영·염홍철 등이 나왔습니다.

주요 파(派)

국파공파, 동정공파, 청강공파

국파공파 (菊坡公派)

국파공파는 중시조 염제신의 맏아들 염국보를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염국보는 호가 국파(菊坡)이며 1355년 문과에 급제해 예문관 대제학, 서성군에 올랐고 여러 차례 지공거를 맡았다고 합니다.

광명시 가학동에 입향한 염공거·염백거 형제가 이 계통의 후손으로 소개되고, 나주에도 국파공파 종가에 대한 기사가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염수정 추기경과 야구인 염경엽을 이 파로 소개합니다. 세부 분파는 족보로 확인하세요.

동정공파 (東亭公派)

동정공파는 염제신의 둘째 아들 염흥방을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염흥방은 호가 동정(東亭)이며 1357년 장원 급제하고 서성군에 봉해졌으나 1388년 무진피화로 처형되었습니다.

아들 염각(4세)이 임실로 내려가 임실·남원·나주 등에 세거했고, 후손 일부가 조선 중기 파주 교하와 연천·적성으로 올라왔다고 합니다. 소설가 염상섭이 이 파로 소개됩니다(나무위키).

청강공파 (淸江公派)

청강공파는 염제신의 셋째 아들 염정수를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염정수는 호가 훤정(萱庭)이며 1371년 문과에 급제해 대제학에 이르렀고 문집 『훤정집』이 있었다고 하나, 1388년 형 염흥방과 함께 처형되었습니다.

이 파의 세거지와 주요 후손은 이번 조사에서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위키백과·나무위키가 중시조 아래 세 파의 하나로 꼽습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대표 인물

염형명(시조, 고려 태조 때 사도·삼한벽상공신), 염상(고려 개국 이등공신), 염신약(고려 중기 정당문학), 염승익(충렬왕 때 흥법좌리공신·도첨의중찬), 염제신(중시조, 문하시중·곡성부원군), 염국보(국파공파 파조, 대제학), 염흥방(동정공파 파조, 1388년 처형), 염정수(청강공파 파조, 대제학), 신비 염씨(공민왕의 후비), 염걸(정유재란 강진 의병장, 4충), 염상섭(소설가, 『만세전』 『삼대』), 염수정(추기경, 서울대교구장), 염재호(고려대 제19대 총장), 염태영(수원시장 3선, 국회의원), 염홍철(대전광역시장)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본관의 변천: 봉성에서 파주까지

위키백과는 본관이 봉성(峰城) → 곡성(曲城) → 서원(瑞原) → 파주로 바뀌었다고 설명합니다. 처음에는 시조가 살던 봉성을 본관으로 삼았고, 1354년(공민왕 3년) 염제신이 곡성부원군에 봉해지자 곡성으로 바꾸었으며, 지명이 서원으로 바뀌자 본관도 서원으로 했다가, 조선 시대 지명이 파주로 정해지면서 오늘날의 파주 염씨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파주의 옛 이름은 고구려의 파해평사현·술이홀현에서 시작해 신라 경덕왕 때 파평현·봉성현이 되었고, 1387년 봉성현이 서원현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런 연유로 파평 염씨·서원 염씨·곡성 염씨가 별도로 집계되지만 같은 계통으로 봅니다. 곡성 봉작 시기와 호칭(곡성백/곡성부원군)은 자료마다 약간 다르게 적힙니다.

세 파: 국파공파·동정공파·청강공파

위키백과와 나무위키는 중시조 염제신 아래 세 파를 꼽습니다. 국파공파는 파조 염국보, 동정공파는 파조 염흥방, 청강공파는 파조 염정수입니다. 나무위키는 염수정 추기경과 야구인 염경엽을 국파공파, 염상섭을 동정공파로 소개합니다. 이 밖에 세부 분파(종파)는 이번 조사에서 근거를 찾지 못했으니 족보로 확인하세요.

세거지

위키백과 정보상자가 꼽는 세거지는 경기 수원시 장안구 율전동, 강원 양구군 동면 임당리, 전남 보성군 문덕면, 전북 임실군 신평면 원천리, 충북 옥천군 안내면 용촌리, 충북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 전남 나주시 세지면, 그리고 함경남도 단천군·홍원군입니다. 우리문화신문은 염제신의 5세 후손이 상주·풍덕·보성·나주로 나뉘었고, 염흥방의 아들 염각이 임실로 내려가 임실·남원·나주 등에 세거했다고 설명합니다. 동정공파의 후손 가운데는 10세 염흥서가 조선 중기에 파주 교하 북면 가사리로 올라왔고, 손자 효달이 연천군 북면에, 14세 의만(1730~1801)이 적성 어유지리에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국파공파의 염공거·염백거 형제는 고려 말~조선 초 광명시 가학동 장터말에 정착했다고 전하며, 나주에는 염제신을 모시는 충경서원이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의 활약

우리문화신문은 임진왜란 때 염말경이 옥천에서 의병을 모아 왜군을 물리쳤고 염언상은 이순신 휘하에서 추풍령 전투 중 순직했다고 소개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염석산이 1905년 홍성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염중희가 의병 운동을, 염승필이 논산에서 만세운동을 이끌었으며 염온동·염흥미·염재항이 광복군으로 활약했다고 합니다. 이들의 독립유공 포상 여부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관련 유적

염제신 초상(보물 제1097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 보관되는 것으로 소개되고, 염제신의 묘와 신도비는 장단군(현 휴전선 이북 지역)에 있어 찾아가기 어렵습니다. 강진군 칠량면에는 염걸 등 4충을 모신 사충부자형제묘(전남 기념물, 1978년 지정)가 있으며, 강화군에는 철종의 외숙 염보길이 살았다는 냉정리 집(지방문화재 제8호)이 있다고 소개됩니다. 방문 전 위치와 개방 여부는 해당 기관에 확인하세요.

인구

198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파주 염씨는 12,099가구 51,143명으로 소개됩니다(종친회 자료는 51,189명으로 적어 자료마다 약간 다릅니다). 2000년 조사에서는 16,628가구 53,539명이었고, 2015년 조사에서는 57,531명입니다. 파평·서원·곡성 염씨를 합치면 63,350명이고, 염씨 전체는 69,387명으로 성씨 순위 60~61위로 소개됩니다.

항렬

대동항렬은 16세부터 32세까지 정리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16세는 상(相)·진(振), 18세는 재(在)·정(廷)·장(章), 21세는 동(東)·병(秉), 23세는 규(圭)·기(基)·사(思)·시(時), 25세는 철·태(泰)·순(淳)으로 소개됩니다. 일부 글자는 자료의 표기 오류로 확인하지 못했으니, 실제 사용은 문중과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어 반드시 우리 집안 족보와 대조하세요.

종친회

종친회 사이트(파주염씨인터넷족보)가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번에 사이트의 보안 인증 문제로 직접 열람하지 못했습니다. 연락처와 정확한 대종회 명칭은 확인하지 못했으니 문중에 문의하세요.

염(廉)씨 외에 마을 염(閻)씨는 2015년 24명으로 따로 집계됩니다. 본관이 파주인지 용담인지는 족보로 확인하세요. 용담 염씨는 여주 용담리를 본관으로 하며, 철종의 생모 용성부대부인 염씨가 이 집안 출신이라고 전합니다.

우리 파주 염씨 가계도, 이렇게 만드세요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파주)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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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염씨 종친회

파주 염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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