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 때 강진에서 의병을 일으켜 이순신 휘하에서 싸운 의병장, 선무원종공신, 4충 부자형제
| 생몰 | 1545 ~ 1597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파주 염씨 |
염걸(廉傑, 1545~1597)은 조선 중기의 의병장으로 본관은 파주이며 자는 국충(國忠), 호는 퇴은당(退隱堂)입니다. 1545년(인종 1)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 율변리에서 염인형의 맏아들로 태어났다고 소개됩니다. 어려서부터 글재주와 힘이 뛰어났고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다고 합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정보는 1545~1597로, 지역 신문 기사는 순절 연도를 1598년으로 적어 사망 연도는 자료마다 1597년과 1598년으로 엇갈립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52세의 나이로 동생 염서·염경, 외아들 염홍립과 함께 300여 명의 의병을 모았다고 합니다. 강진 대구면 구십포로 쳐들어온 일본 수군을 맞아 해안선에 허수아비를 세워 병력이 많아 보이게 했고, 밤안개를 틈타 기습하며 적진에 격문을 쏘아 혼란을 일으켰으며, 수정사(정수사로도 적힘) 계곡으로 적을 유인해 크게 이겼다고 전합니다. 이 싸움에서 동생 염경이 순절했습니다. 이후 이순신 휘하에서 장흥 회령진, 광양 왜교성, 노량해전, 순천 예교성 전투 등에 참전했다고 합니다.
노량해전에서 적선 수십 척을 부수고 적장 10여 명을 죽이는 공을 세웠으나 이순신이 전사하는 바람에 공적이 조정에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다고 하며, 그는 후퇴하는 일본군을 거제도까지 추격하다 순절했다고 전합니다. 이순신이 그의 활약을 장계로 보고했고 선조가 수문장 직책을 내렸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뒷날 선무원종공신 2등에 녹훈되었고 자헌대부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고 합니다. 염걸·염서·염경과 염홍립은 ‘4충(四忠)’으로 불리며 칠량면 단원리의 사충부자형제묘에 함께 모셔져 있고, 곁에 주인을 따라 싸우다 죽은 노비의 ‘충노의 묘’가 있습니다. 이 묘는 1978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고 소개됩니다.
파주 염씨는 1388년의 화 이후 오래 조정에서 인물이 드물었으나, 임진왜란 때 염걸·염서·염경·염홍립과 염언상·염말경·염세경 등이 의병으로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 등에 올랐고 이를 계기로 다시 알려졌다고 위키백과와 나무위키가 설명합니다. 염말경은 옥천에서 의병을 모아 왜군을 물리쳤고, 염언상은 이순신 휘하에서 추풍령 전투 중 순직했다고 우리문화신문은 소개합니다.
수정사 입구에는 ‘퇴은당염걸장군전승기적비’가 있고, 강진 고려청자 축제에서는 그의 허수아비 전술을 본뜬 행사로 승리를 기념한다고 지역 신문이 소개합니다. 행사 내용은 해마다 달라질 수 있으니 강진군에 확인하세요.
강진군 칠량면 단원리에 염걸·염서·염경·염홍립을 함께 모신 사충부자형제묘가 있으며 1978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정수사(수정사)에 충효사와 전승기적비가 있다고 소개됩니다.
강진 구십포·수정사 계곡에서 일본 수군을 막았고, 이후 이순신 휘하에서 노량해전 등에 참전했다고 전합니다.
염걸, 동생 염서·염경, 아들 염홍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