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흥방 廉興邦

고려 말 과거에 장원 급제한 문신, 삼사좌사, 동정공파 파조; 1388년 임견미 일파와 함께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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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388
시대고려 말
본관파주 염씨

생애 약력

염흥방(廉興邦, ?~1388)은 고려 말의 문신으로 본관은 파주이고 자는 중창(仲昌), 호는 동정(東亭)입니다. 아버지는 문하시중 곡성부원군 염제신이며, 형 염국보, 동생 염정수가 있고 누이 가운데 한 명은 공민왕의 후비 신비 염씨가 되었습니다. 태어난 해는 전하지 않으며, 파주 염씨 동정공파(東亭公派)의 파조로 받들어집니다.

1357년(공민왕 6년) 4월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했고, 홍건적을 물리치고 개경을 되찾은 공으로 1363년 위위윤으로서 이등공신에 책봉되었습니다. 1367년 7월 밀직지신사가 된 뒤 밀직부사·밀직제학을 지냈고, 1374년에는 도병마사로서 최영과 함께 제주의 목호(몽골 계통 목마 관리 세력)를 토벌했습니다. 우왕이 즉위한 직후 이인임과 지윤이 북원 사신을 맞으려 하자 정몽주 등과 함께 반대하다 이인임의 미움을 사 외지로 유배되었으나, 곧 서성군에 봉해졌습니다. 예문관대제학에 이르렀다고도 전합니다.

그러나 뒷날 그는 이인임·임견미 일파와 어울려 좋은 땅을 가진 이들에게 노비를 보내 폭력으로 빼앗았고, 관청 증서가 있어도 소용없어 ‘수청목 공문’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고 합니다. 1387~1388년 사이 그의 가노 이광이 백주의 조반의 땅을 빼앗고 욕을 보이자, 분노한 조반이 군사를 이끌고 이광을 죽였고, 염흥방은 이를 반역으로 몰아 조반 일가를 잡아 가혹하게 고문했습니다. 이 일이 우왕과 최영에게 알려져 1388년 1월 조반은 풀려나고 염흥방은 순군옥에 갇혔으며, 임견미·염정수 등과 함께 사형을 당하고 일가친척도 화를 입었습니다. 이것이 ‘무진피화’이며, 뒤이어 이성계 일파가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려사』는 가노가 땅을 빼앗고 이를 되찾으려던 조반을 도리어 반역자로 몰았다고 전합니다. 위키백과는 우왕이 최영과 논의한 끝에 조반을 석방하고 염흥방을 하옥했다고 적습니다. 이후 임견미 일파도 함께 체포되어, 각 도에 찰방을 보내 빼앗긴 토지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한 개인의 가노가 일으킨 분쟁이 권문세족 전체의 숙청으로 번진 대표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후손과 문중

동정공파는 그를 파조로 하며, 우리문화신문은 아들 각(4세)이 임실로 내려가 임실·남원·나주 등지에 세거했다고 소개합니다. 6세손 수의 후손이 임실군 신평면에 살다가 10세 흥서가 조선 중기에 파주 교하 북면 가사리로 올라왔고, 손자 효달은 연천군 북면에 자리 잡았다고도 합니다. 소설가 염상섭도 동정공파로 소개됩니다(나무위키).

묘소

묘소의 위치는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손은 아들 염각(4세) 등이 임실·남원·나주 등지에 세거했다고 전합니다.

염흥방 자주 묻는 질문

염흥방은 왜 처형되었나요?

토지 탈취와 조반 사건이 문제가 되어 1388년 최영·이성계 일파가 이인임·임견미 일파를 숙청할 때 함께 사형되었다고 합니다.

염흥방 가문은 모두 멸했나요?

형제와 친인척이 화를 입었지만 후손은 임실·남원·나주 등지로 흩어져 이어졌다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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