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견미 林堅味

고려 말 문하시중에 오른 무신, 이인임과 권세를 나눈 것으로 평가되며 1388년 최영·이성계에게 제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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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388
시대고려 말
본관평택 임씨

생애 약력

임견미(?~1388)는 고려 말의 무신으로, 본관은 평택입니다. 평성부원군에 봉해진 임언수의 아들이며, 아버지가 군(君)에 봉해진 것은 임견미가 문하시중에 오른 뒤의 일이라 직계가 처음부터 권문세족은 아니었다고 설명됩니다. 공민왕 초 우다치(왕의 숙위부대)에 들어가 공을 세우고 중랑장에 등용되었습니다.

1361~1362년 홍건적이 쳐들어왔을 때 나주도병마사로서 왕을 호종해 1등공신이 되었고, 이듬해 대호군에 올랐습니다. 이후 밀직부사·진주도병마사·전리판서 등 내외직을 두루 거쳤고, 1368년 북계 순무사, 1370년 동녕부 토벌 부원수(이성계와 함께 출전), 1374년 서북면 도순문사를 맡았습니다. 제주 목호의 난 진압과 왜구 격퇴에도 나섰습니다.

1380년 이인임과 함께 경복흥 세력을 제거한 뒤 1381년 문하시중과 평원부원군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1388년까지 이인임·염흥방 등과 매관매직과 토지 겸병을 일삼았다는 비판을 받았고, 그해 최영과 이성계에게 제거되었습니다. 『고려사』는 그를 간신으로 서술하는데, 이는 조선 초에 편찬된 사서의 시각이라는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전란 속의 군직

임견미는 공민왕 때부터 우왕 초까지 외적의 침입이 잦던 시기에 군의 책임을 맡은 인물로 소개됩니다. 1370년 동녕부 토벌에서는 부원수로 이성계와 함께 싸웠고, 1375년에는 심양왕 터터부카의 움직임에 대비해 서경 상원수로 출진했다고 합니다.

권력과 몰락

1380년대 그는 이인임과 함께 정국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고려사』는 인사권과 토지를 독점했다고 적었으나, 이는 최영·이성계가 그를 제거한 뒤 서술된 평가이므로 승자의 기록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육룡이 나르샤』 등 사극에서는 '길태미'로 각색되어 등장합니다.

가계

아버지 임언수는 평성부원군으로 충정공계의 기세조이며, 형제로 임성미·임제미 등이 전합니다. 아들 임치는 우왕의 총애를 받았다고 하며 이 가계는 임치 항목에서 이어집니다.

묘소

묘소의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손

아들 임치가 있고, 딸은 반복해에게 시집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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