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민족대표 33인, 천도교 지도자, 도호는 연암
| 생몰 | 1865 ~ 1948 |
| 시대 | 일제강점기 |
| 본관 | 평택 임씨 |
임예환(1865~1948)은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평택이며 3·1 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평안남도 중화군에서 태어나 어려서 한학을 배웠고, 천도교의 도호는 연암입니다.
24세인 1888년 동학에 입교했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 참가했습니다. 한일 병합을 전후해 천도교 안에서 반일파와 친일파가 맞설 때에는 손병희의 반일 노선을 지지했습니다. 1919년 2월 25일 천도교 기도회 종료 보고차 서울에 갔다가 손병희·권동진·오세창을 만나 3·1 운동에 참여하기로 했고, 나인협·홍기조·나용환 등 평안도의 천도교 지도자들과 함께였습니다.
2월 27일 천도교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최남선이 기초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고, 3월 1일 태화관 모임에서 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불렀다가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습니다. 출옥 후에도 항일운동을 이어 가다 1948년 병으로 별세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임예환은 1888년 동학에 들어갔고 1894년 농민운동에 참가했습니다. 이후 동학이 천도교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손병희의 노선을 따랐다는 점이 이후 행적의 바탕이 됩니다.
1919년 2월 말 서울에서 천도교 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했고, 3월 1일 태화관에서 선언서를 읽은 뒤 스스로 일본 경찰에 알려 연행되었습니다. 임예환은 평안도 천도교 대표들과 함께 이 자리에 있었다고 기록됩니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