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본실의 청개구리」 『만세전』 『삼대』를 쓴 소설가, 호 횡보

| 생몰 | 1897 ~ 1963 |
| 시대 | 일제강점기·현대 |
| 본관 | 파주 염씨 |
염상섭(廉想涉, 1897~1963)은 한국 근대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 본관은 파주, 호는 제월(霽月)·횡보(橫步)입니다. 1897년 8월 30일 한성부(서울, 종로구 적선동으로 소개됨)에서 태어났습니다. 조부는 대한제국 중추원 참의 염인식, 아버지는 가평군수를 지낸 염규환이고 어머니는 경주 김씨이며, 8남매 중 셋째 아들로 전합니다. 나무위키는 동정공파 계통으로 소개합니다. 부인은 김영옥(의성 김씨 문중)입니다.
한성사범학교 부속보통학교와 보성소학교를 거쳐 일본으로 유학해 도쿄와 교토의 중학교를 다녔고, 1919년 게이오대 사학과에 입학했다가 중퇴했습니다. 유학 중 3·1 운동 가담 혐의로 투옥되었습니다. 1920년 《폐허》 동인이 되어 문학을 시작했고, 1921년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한국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24년 『만세전』, 1931년 『삼대』를 비롯해 『사랑과 죄』(1927), 『무화과』(1931), 『효풍』(1948), 『취우』(1952) 등 많은 장편과 「두 파산」(1949) 같은 단편을 남겼습니다. 김동인·현진건과 함께 자연주의·사실주의를 정착시킨 작가로 꼽힙니다.
언론 활동으로 매일신보 정치부장, 만선일보 편집국장(일제강점기 말), 해방 뒤 1946년 경향신문 창간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한국전쟁 때 해군 소령으로 임관해 정훈감실에서 일했고 예비역 해군 중령이 되었으며, 1954년 서라벌예술대학 학장을 지냈습니다. 일제강점기 말 만주 신문사 근무 경력에 대한 평가는 연구자마다 다르므로 이 항목은 태그를 붙이지 않았으며 단정하지 않습니다. 1963년 3월 14일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직장암으로 별세했습니다.
「표본실의 청개구리」(1921)는 한국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로 평가받고, 『만세전』(1924)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실렸습니다. 『삼대』(1931)는 한 집안 3대의 갈등을 그린 장편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김동인과 1932년 「발가락이 닮았다」를 두고 논쟁을 벌였고 이후 15년 동안 관계를 끊었다고 전합니다. 같은 시기 작가로는 김동인, 현진건이 함께 거론됩니다.
조부 염인식은 대한제국 중추원 참의를 지냈고 아버지 염규환은 가평군수였습니다. 이처럼 파주 염씨가 임진왜란 이후 다시 조정에서 활동한 흐름을 근현대까지 이어 보여 주는 집안으로 소개됩니다. 파주 염씨 중시조는 염제신입니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 묘역에 있고, 1964년 6월 문단인과 현대문학사가 문학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동상은 1996년 생가터 부근에 세워졌고 여러 곳을 거쳐 2014년 교보빌딩 앞에 있다고 소개됩니다.
「표본실의 청개구리」, 『만세전』, 『삼대』, 『무화과』, 『효풍』 등이 있습니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 묘역에 있다고 소개되며 문학비가 있습니다. 방문 전 위치를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