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처」「운수 좋은 날」을 쓴 사실주의 소설가, 호는 빙허

| 생몰 | 1900 ~ 1943 |
| 시대 | 일제강점기 |
| 본관 | 연주 현씨 |
현진건(玄鎭健, 1900~1943)은 대구에서 태어난 소설가이자 언론인으로, 호는 빙허(憑虛)이며 본관은 연주입니다. 위키백과는 그의 집안을 역관 등 잡과 출신을 많이 낸 중인 집안이라고 설명합니다. 아버지 현경운과 완산 이씨 사이의 넷째 아들로, 맏형 현홍건은 대한제국 육군 참령, 둘째 형 현석건은 변호사, 셋째 형 현정건은 독립운동가였습니다.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자퇴하고 일본과 중국 상하이에서 공부한 뒤, 1920년 조선일보에 입사했고 동명사·시대일보를 거쳐 동아일보 사회부장과 학예부장을 지냈습니다. 「빈처」(1921), 「술 권하는 사회」(1921), 「운수 좋은 날」(1924), 「B사감과 러브레터」(1925)와 장편 『무영탑』(1938), 『적도』(1939) 등을 남겼으며, 한국 근대 사실주의 소설의 선구로 평가됩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유니폼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신문에 실은 일로 1년간 복역했고, 이듬해 출옥하면서 동아일보를 떠났습니다. 1943년 4월 25일 서울 제기동 자택에서 폐결핵과 장결핵으로 별세했습니다. 200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현진건은 역관 출신이 많은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당숙 현보운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1915년 경주 이길우의 딸 이순득과 혼인했고, 두 딸은 어려서 죽었으며 셋째 딸 현화수만 자랐습니다. 형 현정건은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한 인물입니다.
1920년대 초 「빈처」와 「술 권하는 사회」로 이름을 알렸고, 「운수 좋은 날」은 인력거꾼의 하루를 그린 대표작입니다. 역사소설 『무영탑』, 『흑치상지』를 신문에 연재했는데 『흑치상지』는 검열로 58회 만에 중단되었습니다. 단편집 『조선의 얼골』은 총독부에 의해 금서가 되었습니다.
1936년 동아일보가 손기정의 가슴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실은 사건으로 현진건은 기소되어 1년간 복역했습니다. 출옥하면서 동아일보를 그만두었고, 1940년에는 친일 성향의 잡지 『춘추』에 「선화공주」를 연재하다 중단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2005년 3월 대통령 표창이, 같은 해 8월 15일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2009년에는 그의 이름을 딴 현진건 문학상이 만들어졌습니다.
유언에 따라 화장해 경기도 시흥에 묻혔으나 남서울 개발로 묘소가 사라지고 유해는 한강에 뿌려졌다고 합니다. 서울 부암동에는 집터 표석이 있습니다.
딸 현화수가 소설가 박종화의 장남과 혼인했다고 합니다.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무영탑』 등이 있습니다.
1936년 손기정 선수의 유니폼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신문에 실은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