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위총의 난을 평정한 고려 장군, 연주 현씨의 시조(시랑공)
| 시대 | 고려 의종~명종 |
| 본관 | 연주 현씨 |
현담윤(玄覃胤)은 고려 의종·명종 때의 무신으로, 연주 현씨(延州 玄氏)의 시조로 받들어집니다. 생몰 연도는 전하지 않습니다. 시랑공(侍郞公)이라는 존칭으로 불리며, 위키백과는 그를 평안도 연주의 토착 세력으로서 중앙 관직에 진출한 인물로 추정합니다.
의종 때 도령중랑장이 되었고, 명종 때인 1174년 서경유수 조위총이 난을 일으키자 아들 현덕수와 함께 연주성을 굳게 지켰다고 합니다. 이 공으로 장군이 되었고 뒤에 대장군을 거쳐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으며 연산군(延山君)에 봉해졌다고 전합니다.
세 아들 현덕수·현이후·현덕유가 모두 중앙 관직에 진출해, 연주 현씨는 이들을 계기로 크게 성장했다고 설명됩니다. 현씨의 본관은 연주 외에도 성주·창원·순천·천녕 등 106본이 전하나 모두 현담윤의 후손이 살던 지명이라 하여, 1747년 정묘보와 1982년 임술보에서 연주로 통일했습니다.
현담윤은 연주, 곧 지금의 평안북도 영변 일대에서 세력을 이룬 인물로 보입니다. 위키백과는 그가 토착 세력이었기에 중앙 관직에 나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며, 고려 의종 때 도령중랑장이 되었다고 적습니다. 위키백과 현덕수 항목은 그를 연주도령이라 부릅니다.
1174년 서경의 조위총이 무신정권에 맞서 난을 일으키자 철령 이북 40여 성이 호응했지만, 현담윤은 아들 현덕수와 함께 연주성을 지켰다고 합니다. 현덕수는 연주성을 포위한 서경군 1만여 명을 무너뜨리고 개경 쪽으로 나아가 패퇴하는 서경군을 쳤다고 전합니다. 이 공으로 아들은 내시지후가 되고 아버지는 장군이 되었다고 합니다.
연주 현씨의 시조는 족보와 위키백과, 제주 향토문화전자대전에서 현담윤으로 적습니다. 반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1269년 임연 처단을 내세워 봉기했다가 몽골에 투항하고 동녕부 천호가 된 현효철을 연주현씨의 시조로 소개하는 항목이 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족보의 전승을 따라 현담윤을 시조로 쓰되 이런 차이가 있음을 밝혀 둡니다. 가문의 형성은 현덕수 대를 거치며 이루어졌다는 점은 두 서술이 비슷합니다.
묘소의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장남 현덕수(병부상서), 차남 현이후(광성군), 삼남 현덕유(회원군)를 두었다고 합니다.
고려 명종 때 조위총의 난을 평정한 장군으로 연주 현씨의 시조로 받들어집니다.
현덕수, 현이후, 현덕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