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민족대표 48인의 한 사람,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 호는 기당

| 생몰 | 1893 ~ 1950 |
| 시대 | 일제강점기~대한민국 |
| 본관 | 연주 현씨 |
현상윤(玄相允, 1893~1950)은 평안북도 정주 출신의 교육자·사상사 연구자입니다. 호는 기당(幾堂)이며, 위키백과 분류상 연주 현씨입니다. 와세다대학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1914~1917년 사이에 「한의 일생」, 「박명」, 「재봉춘」 등 단편소설을 쓴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3·1운동 때는 송진우와 함께 민족대표 48인으로 참여했고, 1920년 10월 복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사와 경성보성전문학교 교수를 거쳐 1943~1946년 교장을 지냈고, 1947년 보성전문학교가 고려대학교로 승격되자 초대 총장이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중 북한에 납북되었고 1950년 9월 황해도에서 미군 폭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저서로 『조선유학사』, 『조선사상사』가 있으며 『조선사상사』는 사후 『대한사상사』, 『한국사상사』로 다시 펴내졌습니다. 평가는 한 가지로 정리하기 어렵습니다. 일제강점기 말 친일 성격의 글을 남겼다는 이유로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교육·학술 부문으로 올랐고, 반면 1940년 창씨개명 권고는 거절했다고 합니다.
현상윤은 와세다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한 뒤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소설을 써서 「한의 일생」, 「청류벽」, 「광야」, 「핍박」 등의 단편을 남겼습니다.
1919년 3·1운동에서 그는 송진우 등과 함께 준비에 참여했습니다. 이 일로 재판을 받았으나 1920년 10월 복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1922년 사진에는 김성수 등과 함께한 모습이 남아 있고, 그는 1943~1946년 보성전문학교 교장을 맡았습니다.
1947년 보성전문학교가 고려대학교로 승격하자 초대 총장에 취임했습니다. 재임 중이던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그는 북으로 끌려갔습니다. 1953년 고려대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문학박사 학위가 추서되었습니다.
일제 말 태평양 전쟁 지원을 독려하는 글을 다수 남겼다는 이유로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올랐으나, 1940년 창씨개명 권고는 거절했다고 합니다. 위키백과에는 독립유공 서훈 기록이 없어 족보월드는 별도의 태그를 달지 않고 사실만 적습니다. 본관도 본문이 아닌 분류에서 확인되는 것이어서 종친회 자료로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해는 평양시 룡성구역의 재북인사의 묘에 안장되어 있다고 전해집니다.
3·1운동 민족대표 48인의 한 사람이자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입니다.
위키백과에 서훈 기록이 없습니다. 친일 관련 논란도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