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현진건의 셋째 형
| 생몰 | 1887 ~ 1932 |
| 시대 | 일제강점기 |
| 본관 | 연주 현씨 |
현정건(玄鼎健, 1887~1932)은 대구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연주입니다. 부친은 현경운, 동생은 소설가 현진건입니다. 1910년 중국으로 유학했고, 1919년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군무부 행정관 직무대리를 맡았으며 같은 해 9월 보궐선거로 임시의정원 경상도 의원이 되었습니다.
1920년 상하이 고려공산당에 입당했고 1922년 베르흐네우딘스크 회의에 참가했으며, 1923년 국민대표회의에서 창조파가 조선공화국 건국을 결정하자 이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1924년 상하이 인성학교와 상하이 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일하며 청년동맹회 집행위원을 지냈고, 1927년에는 한국독립당 관내촉성회연합회 집행위원으로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을 추진했습니다.
1928년 상하이에서 일본 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었고, 같은 해 12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1932년 6월 만기 출옥했습니다. 그러나 옥고의 후유증으로 같은 해 12월 30일 상하이 의전병원에서 복막염으로 숨졌습니다. 부인 윤덕경은 이듬해 2월 그를 따라 음독 자결했습니다. 199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현정건은 1910년 중국으로 유학한 뒤 상하이를 무대로 활동했습니다. 1919년 5~9월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 행정관 직무대리를 맡았고, 임시의정원 경상도 의원으로 보선되었습니다. 이후 사회주의 계열에 몸담았지만 독립운동 세력의 분열을 막는 통합 노선을 취했습니다.
1928년 1월 상하이에서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었고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1932년 6월 만기 출옥했으나 옥고의 후유증으로 한 해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부인 윤덕경은 이듬해 음독 자결했습니다. 윤씨 집안과의 겹사돈 관계로 윤치호, 윤치영, 윤보선 가문과 이어진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199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숙부는 현영운, 재종형은 현상건입니다. 현영운은 친일로 변절했다고 위키백과의 현상건 항목에 적혀 있어, 같은 집안 안에서도 길이 갈렸음을 보여 줍니다.
1933년 1월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동소문 밖 미아리에 묘소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안장 경위는 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자녀는 없었다고 합니다.
상하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소설가 현진건의 형입니다.
199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