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건 玄尙健

고종의 측근 역관, 중립 외교 밀사, 상하이 망명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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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875 ~ 1926
시대대한제국~일제강점기
본관연주 현씨

생애 약력

현상건(玄尙健, 1875~1926)은 한성에서 태어난 대한제국의 역관·외교 관료로, 연주 현씨 찬성공파로 소개됩니다. 부친은 역관 출신으로 동래부윤을 지낸 현명운이고 5남 2녀 중 장남이었으며, 현진건·현정건과는 삼종형제 사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랑스어에 능하고 러시아어와 영어도 구사했습니다.

1888년 전보총국 주사로 관직을 시작해 1898년 외부번역관이 되었고, 궁내부 번역과장·예식원 외무과장 등을 지내며 고종 가까이에서 통역과 외교 문서를 맡았습니다. 광무학교장, 한성전기회사 부사장, 인천 통운사 사장도 지냈습니다. 1903년 고종의 밀사로 프랑스에 가서 외무대신 델카세를 만났고, 네덜란드를 거쳐 러시아에서 황제 알현과 극동총독 협의를 했습니다. 1904년 1월 전시 국외중립 선언을 준비했으나 열강의 공식 지지를 얻지 못했고, 2월 한일의정서 체결로 좌절되었습니다.

일본이 제안한 공수동맹에 끝까지 반대해 일본 쪽에서 수배 대상으로 삼았다고 하며, 이후 상하이로 망명해 대동보국회 초대 회장을 지냈습니다. 안중근 의거 변호 비용 모금에 관여했고 1919년 한성정부 조직 때 평정관 13인 중 한 사람으로 선임되었습니다. 1926년 5월 22일 상하이에서 병으로 숨졌고,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위키백과 문서에는 헤이그 특사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역관 가문과 출세

현상건의 집안은 역관을 배출한 중인 계열이었습니다.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전보총국과 외부, 궁내부에서 차례로 일했고, 고종의 통역으로 샌즈 고문관 등 외국인 고문과도 일했습니다.

중립 외교

1903년 프랑스·네덜란드·러시아를 오가며 대한제국의 영세중립을 제안하려 했으나 평화회의가 열리지 않고 헤이그 재판소도 휴정 중이어서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1904년 1월 전시 국외중립을 선언했지만 열강의 공식 지지를 얻지 못했습니다.

상하이 망명

일본이 제안한 공수동맹에 반대한 뒤 상하이로 가 독립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재종형제인 현정건도 같은 상하이에서 활동했습니다. 한편 집안의 현영운은 친일로 변절했다고 기록됩니다.

묘소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손

2남 1녀를 두었으며, 국회의원 현정주와 화가 현채미, 서울대 명예교수 현병구가 후손으로 언급됩니다.

현상건 자주 묻는 질문

현상건은 누구인가요?

고종의 측근 역관으로 1903년 유럽에 밀사로 파견되어 중립 외교를 모색한 인물입니다.

헤이그 특사인가요?

위키백과 문서에는 헤이그 특사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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