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수 玄德秀

조위총의 난 때 연주성을 지킨 고려 무신, 병부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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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136 ~ 1215
시대고려 명종~신종
본관연주 현씨

생애 약력

현덕수(玄德秀, 1136~1215)는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연주이며, 연주도령 현담윤의 맏아들입니다. 강직하고 담략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어려서 연주분도장군 김치규의 눈에 띄어 개경으로 갔고 학문에 통달했으나 과거에 여러 번 떨어지고 병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1174년 명종 때 서경의 조위총이 난을 일으키자 철령 이북 40여 성이 호응했지만, 그는 아버지와 함께 연주성을 굳게 지켰고 권행병마대사·권감창사사로 추대되었다고 합니다. 연주성을 포위한 서경군 1만여 명을 무너뜨리고 개경으로 나아가 패퇴하는 서경군을 격퇴해 많은 포로와 무기를 얻었으며, 이 공으로 내시지후가 되었습니다.

이후 안남도호부부사로 나가 청렴하고 밝은 정사를 펴서 관리와 백성의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부낭중에 임명되려 했으나 간관의 반대로 병부낭중이 되었고 사재소경으로 옮겼다가 파직되었는데, 처의 양모가 죽었을 때 친모라고 거짓 보고한 일이 밝혀져 탄핵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종 때 전중감으로 다시 임명되어 여러 번 승진해 병부상서에 올랐고 치사했습니다.

개경 유학과 낙향

현덕수는 어린 시절 연주분도장군 김치규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개경으로 가 공부했고 학문에 통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거듭 낙방하고 병이 들어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는 지방 토착 가문이 중앙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보여 주는 대목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 현담윤은 이 무렵 연주를 터전으로 한 세력이었습니다.

연주성 방어

1174년 조위총의 난에서 연주성을 지킨 일이 그의 가장 큰 업적입니다. 서경군 1만여 명이 성을 포위했지만 무너뜨렸고, 개경 쪽으로 진격해 후퇴하는 서경군을 격퇴했다고 합니다. 이후 내시지후가 되면서 중앙 관직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관직 생활과 시비

안남도호부부사로 있을 때는 청렴하고 밝은 정사로 존경받았습니다. 한편 이부낭중 임명이 간관의 반대로 무산되어 병부낭중이 되었고, 사재소경을 지내다 처의 양모 일로 탄핵되어 파직되기도 했습니다. 신종 때 전중감으로 복직한 뒤 병부상서에 올라 치사했습니다. 두 동생 현이후·현덕유와 함께 가문이 중앙에서 자리 잡는 계기를 만든 인물로 설명됩니다.

묘소

묘소의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현덕수 자주 묻는 질문

현덕수는 어떤 사람인가요?

조위총의 난 때 아버지와 연주성을 지킨 고려 무신으로 병부상서에 올랐습니다.

동명이인이 있나요?

1968년생 전직 기자 현덕수가 있으며 이 인물과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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