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중기 정당문학·예부상서를 지낸 문신, 파주 염씨 문벌 성장의 기반
| 생몰 | 1118 ~ 1192 |
| 시대 | 고려 중기 |
| 본관 | 파주 염씨 |
염신약(廉信若, 1118~1192)은 고려 중기의 문신으로, 위키백과는 본관을 봉성(峯城)으로 적고 출생지를 양광도 봉성군으로 기록합니다. 봉성은 파주의 옛 지명으로 설명되는 곳이며, 파주 염씨 상계에서는 7세로 꼽힙니다. 아버지는 태부소경 염덕방, 어머니는 심후의 딸이고, 아들로 염극권·염극모가 전합니다. 1192년 음력 10월 30일 75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인종 때 과거에 급제해 광주장서기가 되었고 첨사부녹사를 지냈습니다. 명종이 즉위하자 국자감좨주와 한림시강학사를 거쳐 판대부사가 되었으며, 1178년 서북면병마사, 1179년 이부상서, 1183년 추밀원부사 겸 한림학사승지를 지냈습니다. 정당문학과 예부상서에 이르렀고 이후 치사(致仕)했습니다. 이 때문에 파주 염씨가 고려의 문벌 귀족으로 성장한 기반을 닦은 인물로 소개됩니다.
평가로는 키는 작았으나 담력이 커서 제나라의 안영에 비유되었고, 총명하고 기억력이 좋았으며 범엽의 『후한서』에 정통했고 뛰어난 문장을 많이 남겼다고 전합니다. 한편 정중부와의 토지 분쟁 끝에 노비가 죽임을 당하고 자신은 파직된 일도 기록되어 있어, 무신정변기의 혼란이 문신 가문에도 미쳤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문화신문은 그에게 효자 정문이 세워졌다고도 소개합니다. 아들 염극모는 명종 때 문음으로 관직에 올라 고종 때 공부·호부 시랑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위키백과는 염신약의 본관을 봉성으로 적습니다. 파주 염씨 항목은 처음 시조가 살던 봉성을 본관으로 삼았다가 1354년 곡성, 이후 서원을 거쳐 조선에서 파주로 정해졌다고 설명합니다. 즉 ‘봉성 염씨’와 ‘파주 염씨’는 같은 가문의 옛 표기로 볼 수 있습니다.
염극모는 명종 때 문음으로 벼슬을 시작해 고종 때 공부·호부 시랑에 올랐으며, 1217년의 묘지명이 근거로 소개됩니다. 그의 아들 염수장은 1214년 과거에 급제해 예빈경에 이르렀다고 전합니다.
묘소는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봉성은 파주의 옛 이름으로 설명되며 같은 가문의 옛 표기입니다.
정당문학과 예부상서에 이르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