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대제학, 『훤정집』 저자, 청강공파 파조, 호 훤정
| 생몰 | 1388 |
| 시대 | 고려 말 |
| 본관 | 파주 염씨 |
염정수(廉廷秀, ?~1388)는 고려 말의 문신으로 본관은 파주, 자는 민망(民望), 호는 훤정(萱庭)입니다. 할아버지는 염세충, 아버지는 곡성부원군 염제신이며 형 염국보·염흥방의 막냇동생입니다. 파주 염씨 청강공파(淸江公派)의 파조로 받들어집니다.
1371년(공민왕 20년) 문과에 급제했고, 1383년(우왕 9년)에는 지신사로서 한때 인사(전주, 銓注)를 맡았습니다. 이 무렵 정몽주와 함께 몽골식 복장인 호복(胡服)을 폐지하고 중국 제도를 따르자고 건의했다고 전합니다. 최종 관직은 동지밀직과 대제학으로 소개되며, 우리문화신문은 우왕 때 동지추밀직사사와 우문관대제학에 올랐다고도 적습니다. 문집 『훤정집(萱庭集)』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 전하는 판본은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388년 정월 이성계·최영 일파가 임견미와 형 염흥방 등을 숙청할 때 함께 순군옥에 갇혔다가 사형되었습니다. 위키백과는 최영·이성계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적습니다. 학문과 건의가 적지 않았음에도 가문의 화에 이름이 묻힌 셈이며, 후손은 청강공파를 이루었다고 전합니다. 청강공파의 상세한 세계와 세거지는 이번 자료로는 확인하지 못했으니 족보로 대조하시기 바랍니다.
원 간섭기 이후에도 고려 관료 사회에는 몽골식 복식이 남아 있었는데, 위키백과는 염정수가 정몽주와 함께 호복을 없애고 명의 제도를 따르자고 건의했다고 적습니다. 공민왕~우왕 대 대명 외교와 복제 개혁이 겹치는 시기의 일로, 그의 형 염국보가 명의 3년 복제를 들여왔다고 전해지는 것과도 맥락이 닿습니다. 다만 각 건의가 실제 시행된 시기와 범위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청강공파는 염정수를 파조로 하는 파로 중시조 아래 세 파의 하나입니다. 이 파의 주요 인물과 세거지는 이번 조사에서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묘소는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호는 훤정(萱庭)이고 자는 민망(民望)입니다.
염제신의 세 아들 가운데 막내(셋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