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과 신간회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제5대 민의원, 호는 석운
| 생몰 | 1896 ~ 1976 |
| 시대 | 일제강점기·현대 |
| 본관 | 함평 이씨 |
이병헌(1896~1976)은 일제강점기에 3·1운동과 신간회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입니다. 호는 석운(石雲)이며, 1896년 11월 20일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했습니다. 함평 이씨 대교공파의 후손으로 소개됩니다.
1919년 1월 중순 손병희의 부탁으로 비폭력·대중화·일원화의 독립운동 3대 원칙을 적어 동지들에게 전했고, 2월에는 천도교에서 독립운동 자금 5,000원을 인출해 이승훈에게 전달해 기독교계의 만세운동을 도왔습니다. 2월 27일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 인쇄를 돕고 이를 천도교당으로 옮겨 전국에 배부했으며, 3월 1일 태화관의 독립선언식 진행을 기록하고 탑골공원의 학생·시민과의 연락을 맡았습니다.
1927년 신간회가 창립되자 발기인 겸 간사로 활동했고, 해방 뒤에는 고려민주당과 한국민주당에서 일했습니다. 1960년 평택에서 민주당으로 출마해 제5대 민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삼일운동비사』(1959)를 썼고,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이병헌은 손병희의 부탁으로 독립운동의 3대 원칙을 기록해 전하는 한편 천도교와 기독교 쪽을 잇는 자금 전달을 맡았습니다. 보성사에서 인쇄한 독립선언서를 비밀리에 천도교당으로 운반한 일이 그의 이름과 함께 전합니다.
이 내용은 독립유공자 공훈 기록에 근거한 소개이므로 세부는 달리 서술된 자료도 있을 수 있습니다.
1927년 2월 신간회가 창립되자 발기인 겸 간사로 활동했고, 천도교 교역자로 중앙총부와 천도교청년동맹 경성지부에서도 일했습니다. 1969년 『신동아』에 회고록 「신간회운동」을 발표했습니다.
해방 뒤 고려민주당 총무, 민주의원 서무과장, 국립경찰전문학교 교수 등을 거쳤습니다.
1950년, 1954년, 1958년 선거에서는 낙선했고, 1960년 평택에서 당선되어 제5대 민의원을 지냈으며 1963년에는 낙선했습니다. 1976년 1월 17일 세상을 떠났고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습니다.
묘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