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로 동래성 전투에서 달아나 참수된 무신
| 생몰 | 1592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함평 이씨 |
이각(?~1592)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함평입니다. 함평 이씨 이종생의 고손자이고, 증조부 이량, 조부 이세번, 아버지 이윤실로 이어지는 가계로 소개됩니다. 형 이관은 문과 장원으로 예조참판에 올랐습니다. 무과에 급제해 경상좌병사에 이르렀습니다.
『선조수정실록』에는 술버릇이 좋지 않았으나 공을 보면 반드시 소리와 기운을 거두어 온화했다는 평이 실려 있다고 합니다. 1592년 임진왜란 개전 당시 울산 북쪽 병영의 경상좌병사였으나, 부산진 전투에는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했고 동래성 전투에서는 성의 수비를 동래부사 송상현에게 맡기고 빠져나갔다고 전합니다.
이후 임지와 군을 버린 죄를 추궁받았고, 한성이 함락된 뒤 임진강의 도원수 김명원 진중으로 달아나다 붙잡혀 음력 5월 14일 선조가 보낸 선전관에게 참수되었다고 합니다. 드라마 『징비록』(2015)에도 등장합니다.
이각의 가계는 고조부 이종생, 증조부 이량, 조부 이세번(김해부사), 아버지 이윤실로 소개됩니다. 형 이관(1523~1596)은 1548년 문과 장원으로 급제했고, 조카 이효원은 대사간을 지냈습니다.
위키백과는 조카 이효원의 후손으로 김삿갓의 모친 등이 있다고 소개합니다. 한 항목의 설명이므로 족보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각은 개전 당시 울산 병영의 경상좌병사였습니다. 부산진은 개전 첫날 함락되었고 동래성도 송상현의 항전 끝에 함락되었는데, 이각은 동래성에서 나와 물러났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경주성 전투를 앞두고 임지와 군을 버린 죄를 추궁받았습니다. 한 장수의 행적으로서 임진왜란 초기 조선군의 혼란을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거론됩니다.
한성 함락 뒤 임진강 쪽으로 달아나던 그는 체포되어 1592년 음력 5월 14일 참수되었다고 합니다. 『선조수정실록』이 주요 근거로 소개됩니다.
묘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