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적개공신, 함성군에 봉해진 함평 이씨 중시조급 무신, 시호 장양
| 생몰 | 1423 ~ 1495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함평 이씨 |
이종생(1423~1495)은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함평이며 자는 계지(繼之), 시호는 장양(莊襄)입니다. 함평 이씨 10세 이극명의 맏아들로, 함평 이씨 11세로서 여러 파가 갈라지는 계통의 중심에 선 인물입니다. 1460년 무과에 급제해 신숙주 휘하에서 공을 세우며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고 전합니다.
1467년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선봉에서 적진을 무너뜨린 공으로 적개공신에 책록되고 함성군(咸城君)에 봉해졌습니다. 함성군의 한자는 자료에 따라 咸城·咸成으로 다르게 적힙니다. 그 뒤 여러 도의 병마절도사와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한성부 좌윤, 오위도총부 부총관 등을 지냈다고 소개됩니다.
사후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금남 최부가 묘지를 지었다고 전합니다. 『해동명신록』과 『해동명장전』에 이름이 오른 무장으로 소개되며, 함평 이씨의 뛰어난 인물 대부분이 그의 후손이라고 평가됩니다. 아들 이량(이양)도 수군절도사와 병마절도사를 지낸 장군입니다.
이종생은 함평 이씨 10세 이극명의 맏아들이고 아우 이종수는 참판공파의 갈래를 엽니다. 이극명(1388~1454)은 사후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함평군에 봉해졌다고 전합니다(남도일보 연재 기준).
이종생은 1460년 무과에 급제한 뒤 신숙주의 군관으로 북방 정벌에 참여했고, 내금위장을 거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와 오위도총부 부총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1467년 이시애의 난 때 위장으로 선봉에 서서 적을 크게 무찔렀고, 세조실록에는 사졸에 앞장서 적진을 함락했다는 하교가 실려 있다고 소개됩니다. 이 공으로 적개공신에 책록되었는데, 등급은 자료에 따라 2등으로 적힌 곳이 있습니다.
1479년 건주위 정벌에서도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시애의 난은 선형 같은 다른 무신들도 공신이 된 사건입니다.
아들 이량(李良, 1446~1511)은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때 여수 앞바다에 돌제방을 쌓아 왜구를 막았다고 하며, 여수의 장군도가 여기서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함성군파의 후손은 무안·정읍·부여·예산·화성·남양주 등에 퍼져 있다고 소개됩니다.
후대 인물로 임진왜란 때 처형된 이각과 영조 때의 이삼이 함성군파로 소개됩니다.
묘소의 정확한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