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적개공신, 유성군에 봉해진 무신, 시호 평양, 보성 선씨 5세
| 생몰 | 1434 ~ 1479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보성 선씨 |
선형(1434~1479)은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보성, 자는 명여(明汝), 시호는 평양(平襄)입니다. 시조 선윤지의 5세손이며 할아버지는 광유, 아버지는 화로 전해집니다. 1451년(문종 1) 18세에 증광 무과에 급제했다고 합니다.
1455년 세조 즉위에 공이 있어 원종공신 2등에 올랐고, 경상좌도수군처치사·안주목사·한성부윤·회령부사·인수부윤 등을 두루 지냈습니다. 1467년 정월에는 무장이면서도 청렴하다는 평으로 황해도관찰사에 임명되었고, 그해 이시애의 난 때 형조참판으로 1천여 군사를 이끌고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적개공신 3등에 책록되어 유성군(楡城君)에 봉해졌습니다. 성종 즉위 뒤에는 좌리공신 4등에 올랐고, 1472년 정헌대부가 되었으며 1477년에는 지중추부사에 이르렀습니다.
1479년 1월 13일 별세하자 국가 주관으로 장례를 치렀고, 좌찬성에 추증되었다는 설명과 나중에 우의정에 추증되었다는 설명이 함께 전합니다. 일두 정여창이 행장을 지었습니다. 경기도 고양 강매동의 영모재에서 불천위 제사를 지내고, 보성 오충사·고양 오충사·장흥 포충사에 모셔집니다.
선형은 세조 즉위 때 원종공신이 된 뒤 수군·북방·한성부 요직을 두루 거쳤다고 합니다. 1459년에는 상호군으로 한명회를 근접 경호하며 신임을 얻었다고 소개됩니다.
1465년에는 경상도제언순찰사로 경주 북천에 새 수로를 냈고, 1467년 황해도관찰사에 임명되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그를 청렴하고 간결한 무사로 평한 대목이 있다고 합니다.
1467년 이시애의 난 때 그는 수군 동원을 적극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형조참판으로 오자경·한계미 등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난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 공으로 적개공신 3등이 되고 황해도 병마수군절도사, 유성군에 봉해졌습니다.
같은 난에서 공을 세운 이종생도 적개공신이 되었습니다.
사후 추증은 좌찬성이라는 설명과 우의정이라는 설명이 함께 있어 자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대종중 사이트는 고양 오충사 경내의 영모재에서 오세손 선형의 불천위 제향을 모신다고 소개합니다.
증손 선거이를 비롯해 후손 가운데 임진왜란·병자호란의 충신들이 나와 보성 오충사에 함께 배향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 뒷산 일대(유성군 봉군 당시 봉토)에 안장되었다고 전합니다.
셋째 아들 선계철이 경기도 고양 강매동에 입향해 후손이 이어졌고, 증손 선거이가 임진왜란의 장수로 이름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