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선씨 시조, 고려 우왕 때 호남안렴사로 왜구를 소탕했다고 전하는 퇴휴당
| 시대 | 고려 말 |
| 본관 | 보성 선씨 |
선윤지(宣允祉)는 보성 선씨의 시조로, 호는 용암(龍菴) 또는 퇴휴당(退休堂)입니다. 보성선씨대종중과 위키백과는 그가 명나라 문연각학사의 자격으로 고려에 왔다가 고려 우왕 8년(1382)에 호남(전라도) 안렴사가 되어 전라도 해안에 드나들던 왜구를 소탕했다고 전합니다. 출생과 사망 연도, 자(字)는 전하지 않습니다.
대종중 자료는 우왕이 이듬해(1383) 왜구의 소굴을 무찌르고 관음포 일대에서 잔적을 쳐 이긴 공을 높이 사, 피해가 컸던 조양현과 복홀현을 합쳐 한 군으로 삼고 그에게 다스리게 했는데, 이곳이 지금의 보성이라고 설명합니다.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보성에 정착했고, 이곳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도민들이 한식동에 생사당을 세워 추앙했고, 1770년 그 유허비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1831년 사액된 보성 오충사에 후손 선형·선거이·선세강·선약해와 함께 배향되었고,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도 기려집니다. 1862년 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대부분 족보와 후손 문중이 정리한 전승이므로 '전한다'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대종중의 글은 선윤지가 20세에 명나라 전시책에 장원으로 합격해 문연각학사에 임명되었다고 적습니다. 1370년 고려 사신이 명나라에서 왜구 피해를 아뢰자 황제가 그에게 고려로 가서 난을 평정하라 명했고, 우왕이 그를 호남안렴사로 임명했다고 합니다.
이 서술은 후손 문중의 정리이며, 다른 자료는 그가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했다고 간단히 적습니다.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보성에 은거했다고 하며, 후손들은 보성군 보성읍 원봉리 상청룡등 선산에 시조를 모시고 음력 10월 5일에 시향을 올린다고 합니다. 묘소 관리는 보성선씨대종중이 맡습니다.
장흥 포충사(1846)도 시조를 포함한 오충신을 모시며, 음력 3월 15일 향사한다고 소개됩니다.
17세기 족보 편찬 과정에서 고려 이전 기록에서 선씨의 뿌리를 찾지 못해, 공문서로 확인되는 선형의 고조부 선윤지를 시조로 삼았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반면 보성 조성·도촌에 사는 일부 선씨는 진사 선용신을 중시조로 하여 1757년 별보(정축보)를 냈고, 선윤지를 그의 손자로 적었습니다.
대종중은 1768년 전라순찰사의 판결문 등을 근거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보성 선씨 가문 소개에서 양쪽 주장을 병기했습니다.
전남 보성군 보성읍 원봉리 상청룡등 선산(지모제에서 시조·2세·3세 등을 함께 모심)
2세 안경·안혁·희경, 3세 구령·학령·광유·명유·청유·숭열로 이어지며 부사공·선전공·참판공·참의공·순무사공 등의 갈래가 갈라진 것으로 소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