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선씨(寶城 宣氏) — 전남 보성을 본관으로 하며 고려 말 호남안렴사 선윤지를 시조로 모시는 선씨(宣氏)의 대표 본관입니다.
전남 보성을 본관으로 하며 고려 말 호남안렴사 선윤지를 시조로 모시는 선씨(宣氏)의 대표 본관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보성 선씨 인구는 약 41,982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선씨라도 본관(보성)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보성 선씨(寶城 宣氏)는 전라남도 보성군을 본관으로 하며,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41,982명으로 집계된 선씨(宣氏)의 대표 본관입니다. 광주 선씨·밀양 선씨는 『증보문헌비고』에 나오지만 모두 보성 선씨의 지역 호칭이며 같은 뿌리라고 소개됩니다. 성이 같아 보이는 선우(鮮于)씨는 완전히 다른 성씨입니다.
위키백과 계열의 설명은 선(宣)씨의 득성 시조를 중국 주나라의 선왕, 숙손교여(시호 선백), 송나라 자력(시호 선공)의 후손들이 선조의 시호 '선(宣)'을 성으로 삼은 데서 찾습니다. 한반도 보성 선씨가 이 가운데 누구의 후손인지는 공식 사료가 없어 밝혀지지 않았고,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선씨가 전라도 보성의 토성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보성선씨대종중은 이와 달리 노나라 대부 선백(宣伯)을 원조로 하여 시조 선윤지가 명나라에서 고려로 왔다고 정리합니다. 중국에서 왔다는 전승과 보성 토성이라는 기록이 함께 전하므로, 어느 쪽이든 문헌상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선윤지(宣允祉)는 호가 퇴휴당(退休堂)으로, 명나라 문연각학사로 고려에 왔다가 우왕 8년(1382) 호남안렴사가 되어 왜구를 소탕했다고 전합니다.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보성에 은거했고, 이곳이 본관이 되었다고 합니다. 시조 이전의 기록은 확인되지 않아 17세기 족보 편찬 때 공문서로 확인되는 선형의 고조부 선윤지를 시조로 삼았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1681년 신유초고를 거쳐 1738년 다시 모여 1749년 최초의 족보인 기사보가 간행되었습니다. 이후 을사보(1785), 정미보(1847), 무오보(1978), 정축보(1997) 등이 이어졌습니다. 보성 조성·도촌에 사는 일부 선씨는 선용신을 중시조로 하여 1757년 별보를 냈고, 시조 문제를 둘러싸고 1768년 전라순찰사 판결 등 송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대종중과 조도계열의 주장이 갈리므로 가문 소개 아래 파 카드에서 양쪽을 함께 밝혔습니다.
3세에서 구령(부사공)·학령(선전공)·광유(참판공)·명유(참의공)·청유(순무사공) 계통이 갈라집니다. 조선 전기의 선형은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유성군에 봉해졌고, 그 증손 선거이는 행주대첩에 참전하고 울산성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병자호란 때 쌍령에서 전사한 선세강, 심양 사행 기록을 남긴 선약해와 함께 시조 선윤지를 모신 보성 오충사의 오충신입니다. 이 밖에 울산 전투의 선극례, 어가를 호종하다 순절한 선여경이 있습니다.
현대에는 해태·삼성·KIA에서 활약한 야구인 선동열(선거이의 14세손으로 소개), 초대 외교통상부 차관을 지낸 선준영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보성 선씨는 인구가 많지 않은데도 문과 7명, 무과 약 30명을 배출했다고 소개됩니다(무과는 자료마다 24~31명으로 갈립니다).
시조 논쟁과 조상의 연대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우리 집안의 파와 세계는 대종중과 족보로 확인하세요.
부사공파, 선전공파, 참판공파, 참의공파, 순무사공파, 조도계열(선용신계)
부사공파는 시조 선윤지의 3세 선구령(宣龜齡)을 파조로 하는 파로 대종중 세계도에 올라 있습니다. 부사공(府使公)이라는 이름은 세계도의 표기를 따른 것이며, 구령의 관직과 생몰년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대종중 사이트의 '공계별 인물'에 부사공 항목이 따로 있습니다. 세계도의 배열로 보아 4세 옥암공 선시중이 이 계통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나(추정) 확정하지 못했습니다. 선시중은 세종조에 능성현령을 지냈고 뒤에 공조판서에 올랐다고 장흥 포충사 소개에 나옵니다. 그의 선정비가 화순 능주향교에 있으며, 장흥 포충사에는 6세 선우빈(진사·효자)도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 옥암공파보(임오보)가 1942년에 따로 간행되었다고 합니다.
선전공파는 시조의 3세 선학령(宣鶴齡)을 파조로 하며, 선전공(宣傳公)은 그의 공칭입니다. 선전공파보(정해보)가 1947년에 간행되었습니다.
대종중은 선전공계 후손이 11세 선이벽을 입향조로 하여 임진·병자 양란 뒤에 보성읍 봉산리에 들어왔다고 설명합니다. 봉산리는 170여 가구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보성 선씨인 집성촌이며, 왜구가 자주 나타나자 보성읍 중심에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파조 선학령의 관직과 생몰년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참판공파는 시조의 3세 선광유(宣光裕)를 파조로 합니다. 위키백과는 광유를 안악지군사로, 증 호조참판으로 소개하며, 아들 화는 여산지군사로 증 우찬성이라 합니다. 참판공파보(경오보)는 1930년에 간행되었습니다.
이 계통에서 5세 선형이 나와 유성군에 봉해졌고, 선형의 증손인 8세 선거이가 임진왜란의 장수로 이름을 남겼습니다(대종중 세계도의 5세 형, 6세 숙철, 7세 상, 8세 거이 배열 기준).
선형의 셋째 아들인 6세 선계철은 의성현감을 지냈고 1460년대에 경기도 고양 강매동 매화정마을에 입향했습니다. 이곳에 고양 오충사와 선형의 불천위를 모시는 영모재가 있으며, 2011년 참판공 문중이 강릉의 오충사를 강매동으로 옮겨 고양 유림과 봄가을로 제향한다고 합니다.
참의공파는 시조의 3세 선명유(宣明裕)를 파조로 하는 계통으로 대종중 세계도에 올라 있으며, 2세 선안혁의 두 아들 명유(참의공)와 청유(순무사공)로 갈라집니다.
대종중 사이트의 '공계별 인물'에 참의공 항목이 따로 있으나 내용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위키백과는 참의공파보가 1930년에 나왔다고 적지만 대종중의 간행일람표는 같은 해의 경오보를 참판공파보로 적어 두 자료가 갈립니다. 파조의 관직과 세거지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순무사공파는 시조의 3세 선청유(宣淸裕)를 파조로 합니다. 2세 선안혁의 아들로 형 명유(참의공)와 갈라진 계통입니다.
대종중은 9세 선극례(병사공)를 이 계통의 후손으로 소개합니다. 선극례의 손자인 선무랑 선대규가 1630년대에 울주군 삼동면 금곡리에 입향했고, 후손이 번창해 금곡리에 15가구, 울산·울주에 100여 가구가 살며 일부는 김해·부산에도 산다고 합니다.
금곡리에는 선청유·선극례·선대규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제실이 있고, 후손들이 세운 울주 원모사에 2006년 5월 10일 현판식과 추모제를 올렸습니다. 마을에는 선명규의 공적비도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조도계열은 보성군 조성면과 도촌면(조성·도촌)에 사는 선씨로, 진사 선용신(宣用臣)을 중시조로 삼아 1757년 별보(정축보)를 낸 갈래입니다. 전체 보성 선씨의 5% 미만(약 3,000명)으로 소개됩니다.
조도계열은 선중의 호구첩과 선문환 가승 등을 근거로 시조 선윤지가 선용신의 손자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반면 보성선씨대종중은 이 문서들의 연대가 어긋난다고 보고, 1749년 기사보가 선윤지를 시조로 정했으며 1768년 전라순찰사의 판결과 1783년 보성군수의 판결이 조도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양쪽 주장이 갈리므로 여기서는 양쪽 입장을 모두 적고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이 계열의 인물로 선여경(1551~)이 알려져 있고, 득량면 정흥리 호음동에 선씨육충유장비가 세워졌습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선윤지(보성 선씨 시조), 선형(이시애의 난 적개공신 유성군), 선거이(행주대첩 부원수), 선세강(쌍령 전투 순절), 선약해(심양일기 저자), 선극례(울산 전투 무신), 선여경(어가 호종 순절), 선동열(야구 선수·감독), 선준영(초대 외교통상부 차관), 선영제(육군참모차장)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보성선씨대종중은 선씨의 원조를 춘추시대 노나라 대부 선백(宣伯)으로 보고, 진나라에서 『통역상』을 지은 일, 한나라 때 선병이 왕망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후한 광무제에게 어사로 맞이된 일 등을 시조 이전의 이야기로 소개합니다. 이어 송나라 흠종 때 선찬이 사신으로 고려에 왔고, 1368년 선천계가 명 태조의 명으로 고려에 와 송경에 머물렀다는 기록을 소개하지만 이들의 유적이 『고려사』에 전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밝힙니다. 선씨 중국 전래 설화는 문헌으로 확인하기 어려우니 '전한다'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보성읍 원봉리 상청룡등 선산에는 시조의 묘소와 2세 2위, 3세 5위, 4세 선시중, 5세 선상충·선상근 등 모두 11위가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도제각에 묘비가 있고 관리는 보성선씨대종중이 하며 시향은 음력 10월 5일이라고 소개됩니다. 4세 옥암공 선시중의 묘소 문인석 두 점이 도난당했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보성 오충사: 시조 선윤지와 선형, 선거이, 선세강, 선약해를 배향한 사우로, 1831년 사액되었으나 1860년대 말~1871년 서원 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60~61년 복설되어 사림이 봄가을로 향사한다고 합니다. 강당인 보성 충의당은 1937년 건립된 건물로 2012년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장흥 포충사: 1846년 건립되어 오충신과 4세 선시중, 6세 선우빈의 위패를 모시고 음력 3월 15일 향사한다고 소개됩니다. 화순 능주향교에는 선시중의 선정비가 있습니다.
고양 오충사와 영모재: 강릉 대전동의 오충사를 2000년대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강매동으로 옮겼다고 하며, 경내 영모재에서 선형의 불천위 제사를 모십니다. 음력 3월 22일과 9월 22일에 제향한다고 소개됩니다.
고양 행주서원과 울산 충의사: 행주서원은 권율의 부원수로 선거이를 함께 제향하고, 울산 충의사와 울주 원모사는 정유재란 때 울산에서 싸운 선극례 등을 기립니다.
선씨육충유장비: 득량면 정흥리 호음동에 선여경 일가의 순절을 기리는 비가 있으며, 광주 광산구에는 선거이의 충신정려문이 있다고 합니다. 경기도 광주시 정충묘에서는 선세강의 제례를 지냅니다.
대전 뿌리공원: 2016년 6월 18일 대전 뿌리공원에 보성 선씨 유래비 조형물(198번)이 제막되었다고 합니다.
보은 선병국 가옥: 충북 보은군 장안면 개안리의 99칸 한옥으로, 전남 고흥이 본향인 보성 선씨 가문의 선정훈이 1919~1921년에 지었다고 소개됩니다.
본관지인 보성군에는 보성읍 봉산리(170여 가구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보성 선씨, 선전공계가 11세 선이벽 때 임진·병자 양란 뒤 입향), 조성면 봉능리, 득량면 정흥리 등이 소개됩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강매동 매화정마을은 선형의 셋째 아들인 6세 선계철이 1460년대 입향한 곳으로 100여 호 중 60여 가구가 보성 선씨라고 합니다. 강릉시 대전동 송암리는 11세 선순하가 1650년대에 정착했고, 울주군 삼동면 금곡리는 순무사공계 선대규가 1630년대에 입향했으며, 충남 논산시 연무읍 마산리는 9세 선의춘 이후 1660년대부터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광주 광산구 도산동도 집성촌으로 소개됩니다.
선씨의 본관으로는 보성이 압도적이며, 광주·밀양은 보성의 지역 호칭이라고 설명됩니다. 연안 선씨 등 다른 본관이 따로 있는지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선우(鮮于)씨는 별개의 성씨입니다.
종중 업무는 보성선씨대종중이 맡으며 사무실은 전남 보성군 보성읍 중앙로 80으로 안내됩니다(공식 사이트 boseongsun.or.kr, 전화번호는 사이트에 표기되어 있으나 변경될 수 있으니 확인하세요). 사액 오충사 유지보존회와 청장년회, 대종중 카페가 따로 소개됩니다. 대종중 사이트의 보학 항목에는 서문, 연혁, 보첩 간행일람표, 세계도, 항렬도표가 있습니다.
대종중의 항렬도표는 통일 항렬을 17세 흠(欽), 18세 영(永), 19세 식(植), 20세 병(炳), 21세 규(圭), 22세 종(鍾), 23세 원(源), 24세 동(東), 25세 무(戊)계 행(成·茂·武·儀), 26세 기(己)계 행(紀·起·範), 27세 경(庚)계 행(康·廣·度·慶), 28세 신(辛), 29세 임(壬), 30세 계(癸)로 보여 줍니다. 표의 일부는 파별로 다르고 일부 글자가 읽히지 않아 위 정리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17세 흠(金)·영(水)·식(木)·병(火)·규(土)로 금·수·목·화·토의 오행이 이어지는 글자를 쓰는 구성으로 보입니다. 파와 지역에 따라 다르니 족보와 대종중으로 확인하세요.
1985년 7,651가구 33,105명, 2000년 10,821가구 34,842명, 2005년 10,094가구 38,849명으로 집계되었고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41,982명입니다. 선윤지 후손이 약 95%, 선용신 후손(조도계열)이 5% 미만(약 3,000명)이라고 소개됩니다.
조선시대 문과 7명(선문주·선세휘·선순보·선약봉·선준채·선진규·선헌)과 무과 29~31명, 생원·진사시 등 다수가 급제했다고 소개됩니다. 인구에 비해 무과 급제자가 많은 편이어서 무인의 가문이라는 평을 받습니다.
시조 논쟁과 유적의 지정·연혁은 자료마다 다릅니다. 방문과 제향 일정은 대종중에 확인하세요.
보성 선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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