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 울산 전투에 참전했다가 신령 전투에서 전사한 무신, 선무원종공신 1등
| 생몰 | 1556 ~ 1597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보성 선씨 |
선극례(1556~1597)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보성, 자는 예중(禮中), 호는 의재(義齋)입니다. 시조 선윤지의 9세손이며, 대종중은 3세 청유(순무사공)의 후손으로 소개합니다. 어려서부터 효성과 우애가 출중했고 1576년 무과에 급제했다고 합니다.
오위의 부장·위장 등을 거쳐 절충장군이 되었고 임진왜란 때 대호군을 지내다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다고 합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울산 전투에 참여해 공을 세웠으나 신령 전투에서 42세로 전사했습니다.
1605년 선무원종공신 1등으로 책록되었고, 울주군 작괘천(작천정) 일대의 선무원종공신비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경상도에 살던 후손들과 보성 대종중 사이에 교류가 없어 오충신에 함께 들지 못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울주군 삼동면 금곡리에 후손의 집성촌과 제실이 있고 울산 충의사, 울주 원모사에 모셔졌습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울산 전투에서 공을 세운 뒤 신령면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합니다. 같은 울산성 전투에서 전사한 선거이와 함께 두 사람을 임진왜란 당시 보성 선씨의 대표 무장으로 보는 설명이 있습니다.
울주군 삼동면 금곡리에는 손자 선대규가 1630년대에 입향했다고 하며, 후손들이 선청유·선극례·선대규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제실을 지었습니다. 울주 원모사는 2006년 5월 현판식과 추모제를 열었다고 합니다.
경북 영천시 팔공산 인근에 묘비를 세웠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