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좌의 난 때 성문을 지켜 분무공신이 된 훈련대장, 함은군, 호는 백일헌

| 생몰 | 1677 ~ 1735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함평 이씨 |
이삼(1677~1735)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함은군(咸恩君)에 봉해진 함평 이씨 인물입니다. 자는 원백(遠伯), 호는 백일헌(白日軒)입니다. 소론의 중심지였던 충청도 노성현(지금의 논산시 노성면)에서 태어나 명재 윤증의 문하에서 공부했고, 힘과 담력이 뛰어나 병조판서 김구의 권고로 무예를 닦아 1705년 무과에 급제했습니다.
1715년 평안도 절도사, 1719년 함경남도 병마절도사를 지냈고, 신임사화 때는 포장 역할을 한 공으로 부사공신 1등이 되었다고 합니다. 영조 때 노론이 정권을 잡자 유배되었으나 정미환국 뒤 훈련대장이 되었고, 1728년 이인좌의 난 때 좌변포도대장 겸 훈련대장으로 성문을 잘 지킨 공로로 분무공신 2등에 책록되어 함은군에 봉해졌습니다.
영조는 그의 충성을 두고 '일은 밝은 해처럼 명백하고 충성은 해를 꿰뚫는다'는 뜻으로 백일헌이라는 호를 내렸다고 전합니다. 병조판서와 공조판서를 지냈고 1735년 1월 59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안도 방어를 다룬 『관서절요』를 썼다고 하나 전해지지 않습니다.
이삼의 아버지 이사길은 윤선거의 문하에서 배웠고, 이삼은 그 아들 윤증에게 수학했습니다. 원래 이름은 송(松)이었는데, 산사에서 지은 시를 본 윤증이 위응물의 시구에서 따 삼(森)으로 고쳐 주었다고 전합니다.
윤증은 무관이 된 뒤에도 편지로 유생의 법도를 잃지 말고 『소학』과 『논어』를 읽으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1728년 이인좌의 난 때 이삼은 좌변포도대장 겸 훈련대장으로 성문을 지켰습니다. 1731년 신임 황해수사가 이삼이 역적과 연루되었다며 인사를 하지 않아 문제가 되자, 영조가 그의 사직을 허락하지 않고 백일헌이라는 호를 내렸다고 합니다.
한편 『좌계부담』은 그의 도량이 좁아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논산시에는 이삼의 영정을 모신 백일헌 영당과 종택이 있고 묘소가 그 뒤편에 있다고 합니다. 후손 이달헌이 1949년 문집 『백일헌유집』을 펴냈고, 1997년 발견된 『만록』을 포함해 2023년 한국유교문화진흥원에서 국역했습니다.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석종리(백일헌 영당 뒤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