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7년 정해왜변 때 손죽도에서 순절한 녹도만호, 시호 충렬
| 생몰 | 1566 ~ 1587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함평 이씨 |
이대원(1566~1587)은 조선 중기의 수군 장수로 본관은 함평, 자는 호연(浩然), 시호는 충렬(忠烈)입니다. 경기도 평택(지금의 포승읍 내기리)에서 태어나 녹도만호가 되었고, 함평 이씨 가운데 성근진사공파로 소개됩니다. 22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했습니다.
1587년(선조 20) 2월 왜선 18척이 전라도 흥양 손죽도 앞바다에 나타나자, 그는 날이 저물고 병력이 부족하니 증원을 받아 이튿날 싸우자고 했으나 전라좌수사 심암이 출전을 강요했다고 전합니다. 이대원은 백여 명의 군사로 출전해 사흘 밤낮을 싸웠으나 지원군이 오지 않았고, 끝내 사로잡혀 왜적을 꾸짖다 죽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정해왜변이라 하며, 임진왜란 5년 전의 일입니다. 조선 조정은 그를 병조참판에 추증했고, 그의 순절은 남구만이 지은 신도비명에 남았습니다. 평택과 여수, 고흥에 묘소와 사당이 있습니다.
1587년 정월 녹도 인근에 나타난 왜선을 이대원이 먼저 추격해 전과를 올렸는데, 이를 두고 좌수사 심암의 시기를 샀다고 전합니다. 2월 왜선이 손죽도에 이르자 심암이 출전을 강요했고, 다른 진의 배는 흩어져 이대원의 배만 적진에 맞섰다고 합니다.
패배를 예감한 그가 절명시를 남기고 옷을 가신에게 맡겨 고향에서 장례를 치르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들은 신도비명과 후대 기록에 근거한 것이므로 세부는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묘소는 평택시 포승읍 희곡리에 있으며 경기도 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평택에는 위패를 모신 확충사가 있고, 매년 추모 제향이 열린다고 합니다.
전남에서는 고흥 쌍충사(전라남도 기념물 제128호)와 여수 손죽도의 이대원 사당(전라남도 기념물 제239호)이 이어지며, 여수에는 최영·이순신·정운과 함께 모신 영당지(전라남도 기념물 제44호)가 있다고 소개됩니다.
남구만은 신도비명에서 재능 있는 장수가 시기와 적의 공격 속에 요절했다고 애석해했습니다. 1615년 광해군 때 이순신과 나란히 충신으로 거론되었고, 1668년 현종 때 병조참판 추증과 정문 표창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함평 이씨 일가에서는 같은 파의 대표 인물로 기억합니다. 아버지 이춘방, 어머니 전주 이씨의 아들로 전해집니다.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희곡리(경기도 기념물 제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