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제의 손자로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해 홍문관 수찬 등을 지냈고, 화순에 그의 묘비 승지공비가 남아 있는 문신, 자는 겸지, 호는 호산

| 생몰 | 1457 ~ 1506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광산 이씨 |
이달선(李達善)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산이며, 자는 겸지, 호는 호산입니다. 화순 광산 이씨 승지공비 해설과 위키백과에 따르면 광산 이씨 시조 이순백의 6대손입니다. 생년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계열 자료와 영문 해설에서 1457년, 국가유산 해설문에서 1475년으로 엇갈리고, 세상을 떠난 해도 1505년 또는 1506년으로 전합니다.
한 설명에 따르면 부친은 부제학으로 일본통신사를 지낸 이형원이고, 이선제의 손자입니다. 성종 17년(1486)에 문과에 급제해 홍문관 수찬, 의정부 사인 등을 지냈다고 하며, 위키백과는 승정원 부승지에 이르렀다고 적습니다. 선조 6년(1573)에는 통정대부 승정원 좌부승지로 증직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후세에서 그를 “승지공”이라 부릅니다.
그의 묘는 전남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지강로 655)에 있고, 묘소 앞의 비가 화순 광산 이씨 승지공비입니다. 비문의 앞면은 귤정 윤구가 짓고 뒷면은 율곡 이이가 지었으며, 글씨는 아계 이산해가 썼다고 합니다. 이 비는 1988년 3월 16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2호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4월 19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 제335호로 재지정되었습니다. 높이는 196cm, 너비는 59cm이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고 평가됩니다.
비의 건립 연도는 1574년(위키백과) 또는 1576년(국가유산 해설문)으로 자료마다 다릅니다. 위키백과는 둘째 아들 이공충이 세웠다고 적고, 비문에는 광산 이씨 선대 1세부터 9세까지의 세계가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의 증손이 기축옥사의 이발·이길 형제입니다.
화순 광산 이씨 승지공비는 화순의 앵남역 부근에 있으며 묘가 비의 뒤편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비문은 당시 호남의 3걸로 꼽히던 윤구가 앞면을, 율곡 이이가 뒷면을 짓고, 조선 8대가로 불리던 이산해가 글씨를 썼다고 합니다. 문장가와 명필이 함께한 조선 초기 금석문이라는 점에서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어 2018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재지정되었습니다. 이산해는 사이트에 따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1762년 화순 능주 개천사에서 펴낸 임오보는 광산 이씨의 첫 족보로 경창부원군(이선제) 유서를 근거로 하고 호산공 이달선의 비문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위키백과가 소개합니다. 가문 계보를 정리할 때 이달선의 비문이 기준이 되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전남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지강로 655)에 묘가 있고, 묘소 앞에 화순 광산 이씨 승지공비(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가 서 있습니다.
손자 이중호를 통해 증손 이발·이길 형제로 이어졌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