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제의 셋째 아들로 호는 청심당,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에 힘써 청백리로 이름났다고 전하며 예조참판에 추증됨
| 생몰 | 1433 ~ 1510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광산 이씨 |
이조원(李調元)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본관은 광산, 호는 청심당(淸心堂)입니다. 위키백과의 광산 이씨 항목에 따르면 1433년(세종 15) 광주 대촌면 이장리에서 이선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1510년(중종 5)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서술에 의하면 천품이 고아해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독학으로 학문을 크게 이루었고, 아버지 필문의 학통을 이어 문장과 도학으로 당대의 종사로 추앙받았다고 합니다. 조정에서 두 번이나 벼슬자리로 불렀으나 단종 폐위와 세조의 즉위에 실망해 나아가지 않았고, 전라·경상 양도의 어사로 특명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벼슬길에 올랐을 때는 탐관오리를 가려내 정리했다고 전합니다. 성종 초에 이조정랑에 제수되었지만 끝내 출사하지 않고 고향에서 제자를 가르치다 생을 마쳐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으며, 뒷날 예조참판에 추증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글은 그의 문하에서 박원형, 신승선, 이경균, 이원휘, 하숭, 고운 등 명신이 나왔다고 하고, 단종 폐위를 슬퍼한 「연화조(蓮花操)」와 고향에서 우국충정을 읊은 「환향가(還鄕歌)」를 남겼다고 소개합니다. 이 두 작품과 제자 명단은 광산 이씨 쪽 서술에 의존하고 있어 이번에 다른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강진 광산 이씨의 입향조 이희는 그의 손자이고, 위키백과는 그의 딸이 고경명의 할머니라는 인연이 기축옥사 때 강진 쪽 후손의 피해를 줄였다고 전합니다. 한 곳의 서술이므로 참고로만 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의 조정 부름에도 나아가지 않았고, 어사로 특명을 받았을 때만 벼슬길에 올랐다는 서술이 있습니다. 성종 초 이조정랑 제수도 사양하고 고향에서 제자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위키백과 광산 이씨 항목은 단종 폐위를 슬퍼한 「연화조」와 고향에서 우국충정을 읊은 「환향가」를 훈민정음 창제 무렵 국한문을 섞어 쓴 귀한 국문 자료로 꼽는다고 소개합니다. 작품의 원문과 전승 경위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평가는 그 서술의 주장으로만 전합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손자 이희가 전남 강진에 정착해 강진 광산 이씨의 입향조가 되었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