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 이씨 상서공파의 1세(일세조)로, 한림학사 사공 상서좌복야·광산부원군에 오른 고려 후기의 인물, 시호 충장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광산 이씨 |
이순백(李珣白)은 고려 후기의 인물로 본관은 광산이며, 광산 이씨 상서공파에서 1세(일세조)로 모시는 분입니다. 생몰년은 이번에 확인한 자료에 나오지 않습니다. 위키백과는 그를 시조 이정(李靖)의 8세손이라 적으면서, 같은 글의 다른 곳에서는 7대손이라고도 적고 있어 세수 계산이 문헌마다 다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1320년(충숙왕 7) 상왕이 원나라 환관의 참소로 토번으로 유배되었을 때 이순백이 홀로 상왕을 호종했고, 1322년(충숙왕 10) 상왕이 풀려나는 데 공을 세워 한림학사 사공 상서좌복야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은청광록대부 광산부원군에 봉해지고 시호는 충장(忠莊)을 받았다고 전합니다. 이 이야기는 광산 이씨 쪽 서술에 의존한 것이어서, 고려 정사 기록과 맞춰 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 둡니다.
그에게는 이숙백·이승백 두 아우가 있어, 세 사람이 각각 상서공파·한림공파·제학공파의 파조로 정리됩니다. 1856년(철종 7) 광주 증심사 선당에서 펴낸 병진대동보는 세 분의 후손을 모두 실은 유일한 대동보이고, 이때 상서공파에서는 이순백을 1세로 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5세 이선제와 그의 다섯 아들 대에 지파가 크게 갈라지면서 상서공파가 광산 이씨의 중심 계통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임오보(1762)와 정해보(1827)도 이순백을 1세로 삼았습니다.
위키백과는 1320년 상왕이 토번으로 유배될 때 홀로 호종했고 1322년 방환에 공을 세웠다고 적습니다. 이후 한림학사 사공 상서좌복야에 올랐다는 서술은 광산 이씨 쪽 자료에 바탕을 둔 것이어서, 고려사 등 다른 기록과 맞춰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순백은 아우 이숙백·이승백과 함께 삼형제로 전하며, 세 사람이 상서공파·한림공파·제학공파로 나뉩니다. 병진대동보(1856)는 세 파의 후손을 모두 실었고 이정을 시조로 정했습니다.
임오보(1762, 화순 능주 개천사)와 정해보(1827)는 이순백을 1세로 한 상서공파만의 족보이고, 이후 임자보(1912)와 임진보(2013)도 상서공파를 다룹니다. 5세 이선제 이하의 지파 이름은 광산 이씨 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손은 5세 이선제와 그의 다섯 아들 대를 거치며 익산·낙안·광주·영광·능주·강진·순천·화순·나주·진도 등지의 여러 지파로 갈라졌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