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변호사의 대부'로 불린 법조인, 조선대학교 제8대 총장, 호는 범하
| 생몰 | 1922 ~ 2011 |
| 시대 | 현대 |
| 본관 | 함평 이씨 |
이돈명(1922~2011)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호는 범하(凡下)입니다. 전라남도 나주 출신이며 함평 이씨 참판공파의 후손으로 소개됩니다. 1950년 조선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52년 제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으며, 1963년부터 민사사건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맡은 황인철·홍성우 변호사를 찾아가 변론에 동참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975년 시인 김지하의 반공법 위반 사건이 변호사로서 처음 선 법정이었고, 이후 3·1민주구국선언사건, 리영희·백낙청 교수 사건, 동일방직·원풍모방 사건, 10·26사건의 김재규 변호,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등 1970~80년대의 주요 시국사건을 변론해 '인권변호사의 대부'로 불렸습니다.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조선대학교 제8대 총장을 지냈고, 정의실천법조인회·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연합·민족문제연구소 등에서 중책을 맡았습니다. 2011년 1월 11일 90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돈명은 1950년대 법조인이 되어 오랫동안 민사사건을 주로 맡다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계기로 시국사건 변론에 나섰습니다. 이후 김지하 반공법 위반 사건을 시작으로 1970~80년대 대표적인 시국사건에서 변호인단에 참여했습니다.
1986년 대한민국 최초의 인권변호사 모임인 정의실천법조인회를 조직했고, 1988년 조선대학교 제8대 총장이 되었습니다. 1992년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연합 초대회장, 1995년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을 맡았습니다.
저서로 『돈명이 할아버지』와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라』가 소개됩니다.
묘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