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씨의 시조, 고려 현종 때 상서좌복야·소성현개국후, 문종 장인 이자연의 할아버지

| 생몰 | 미상 ~ 미상 |
| 시대 | 고려 전기 |
| 본관 | 인천 이씨 |
이허겸(李許謙, 생몰 미상)은 인천 이씨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고려 전기의 호족이자 외척입니다.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문종의 장인인 이자연의 할아버지입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그가 본래 허(許)씨였으나 9대조 허기(許奇)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안녹산의 난으로 피난하던 현종(玄宗)을 호종한 공으로 황제의 성인 이(李)씨를 하사받았다고 전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허기와 이허겸 사이의 대수는 9대 또는 10대로 자료마다 다르게 적혀 있어 이 글에서는 '전한다'는 수준으로만 소개합니다.
고려 현종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상주국(上柱國) 소성현개국후(邵城縣開國侯)에 봉해지고 식읍 1,500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소성은 지금의 인천 지역을 가리키던 옛 이름으로, 인천 이씨가 경원·인주·소성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게 된 배경과도 이어집니다. 그의 딸은 안산 김씨 김은부(金殷傅)와 혼인했는데, 이 집안의 세 딸이 1022년 모두 현종의 후비(원성왕후·원혜왕후·원평왕후)가 되었고, 그 아들들이 훗날 덕종·정종·문종으로 이어져 이허겸은 세 왕의 외증조부로 기록됩니다. 부인은 경주 김씨(김은열의 딸)로 전합니다.
가계를 보면 아들 이한(李翰)은 상서우복야에 올랐고, 이한의 아들이 문하시중 이자연과 이자상(李子祥)입니다. 이 두 손자 가운데 이자연의 세 딸이 문종의 비가 되면서 인천 이씨는 고려 최고의 외척 가문으로 성장했고, 이자상의 후손에서는 이공수·이인로 등이 나왔습니다. 이허겸의 사당인 원인재(源仁齋)는 19세기 초 인천에 마련되었다고 하며, 처음 연수동 신지마을에 있다가 택지개발로 1994년 해체되어 이허겸의 묘역 옆으로 옮겨 복원·증축되었고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시조 사적에 관한 세부 내용은 야사와 족보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으니 종친회 자료와 함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인천 이씨는 신라 경덕왕 때 당나라에 간 아찬 허기가 안녹산의 난 중 현종을 호종한 공으로 이씨 성을 받았다는 전승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조는 허기의 후손인 이허겸으로 모시며, 한국어 위키백과는 허기의 10세손으로, 이허겸 문서는 9대조로 적어 자료마다 대수가 다릅니다.
이허겸의 딸은 김은부와 혼인했고, 그 세 딸이 1022년 현종의 후비가 되었습니다. 그 아들들이 덕종·정종·문종이 되어 이허겸은 세 왕의 외증조부로 기록됩니다.
이허겸의 사당 원인재는 19세기 초 인천에 건립된 뒤 1994년 묘역 옆으로 옮겨져 복원되었고,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원인(源仁)'은 인주(仁州) 이씨, 곧 인천 이씨의 근원이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인천광역시 연수동 일대에 묘역이 있고, 그 옆에 사당 원인재(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호)가 있다고 전합니다(위키백과). 묘역의 정확한 주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이한·이눌·이진, 손자 이자연·이자상 등. 이자연의 후손에서 이자겸·이자현·이자의 등이, 이자상의 후손에서 이공수·이인로 등이 나왔습니다.
고려 현종 때 상서좌복야·소성현개국후에 오른 인천 이씨의 시조이며, 문종의 장인 이자연의 할아버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