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인종의 장인이자 인종의 외조부, 1126년 이자겸의 난을 일으켰다가 몰락한 권신
| 생몰 | 1050 ~ 1127 |
| 시대 | 고려 중기 |
| 본관 | 인천 이씨 |
이자겸(李資謙, 1050~1127)은 고려 중기의 권신으로 본관은 인천입니다. 문종의 장인 이자연의 손자이며 상서좌복야 이호(李顥)의 아들입니다. 부인은 최충의 손자 최사추의 딸인 해주 최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음서로 벼슬길에 올라 합문지후가 되었으나, 누이 장경궁주를 둘러싼 스캔들과 사촌 이자의의 몰락 여파로 한동안 관직에서 물러나 있었습니다. 둘째 딸이 1107년 예종의 후궁으로 들어가 이듬해 비가 되고 1109년 훗날의 인종을 낳으면서 다시 출세했고, 문하평장사·수사도·소성군개국백 등을 거쳤습니다.
예종이 죽자 외손자인 인종을 추대하고 왕위를 노리던 왕실 친인척을 숙청했습니다. 인종 즉위 후에는 자신의 셋째·넷째 딸을 다시 인종의 비로 들였고, 한양공(1122)·조선국공(1124)에 봉해졌으며, 생일을 인수절(仁壽節)이라 부르게 하고 스스로 지군국사(知軍國事)로 칭하는 등 왕에 버금가는 예우를 요구했습니다. 『고려사』는 그의 자제와 가신들의 토지 탈취와 뇌물 수수를 신랄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종이 측근들과 제거를 모의하자 1126년 이자겸은 척준경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반대파를 숙청하고 궁궐을 불태우는 사태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인종이 척준경을 회유하여 그를 떠나게 하자 권력을 잃고 전라남도 영광으로 유배되었으며 이듬해(1127)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배지에서 말린 조기를 먹고 '굽히지 않겠다'는 뜻의 굴비(屈非)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영광 굴비의 유래로 전해지나, 설화적 성격이 강합니다. 이 난은 고려 문벌귀족 사회가 흔들리는 신호로 평가되며, 인천 이씨가 외척으로서 누린 영광과 몰락을 함께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둘째 딸이 예종의 비가 되고 인종을 낳으면서 다시 권력을 얻었고, 인종 즉위를 도운 뒤 두 딸을 더 인종의 비로 들였습니다.
인종의 제거 시도에 맞서 척준경과 함께 난을 일으켰으나, 척준경이 돌아서자 영광으로 유배되었고 1127년 사망했습니다.
유배지에서 말린 조기에 '굽히지 않는다'는 뜻의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영광 굴비의 유래로 전하나 설화로 보는 것이 안전합니다.
유배지 영광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하며, 묘소의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딸들이 예종·인종의 비가 되었고(순덕왕후 등), 막내아들 의장은 승려였습니다. 이자량은 아우, 이자의·이자현은 사촌입니다.
1126년(인종 4)에 이자겸이 척준경과 함께 일으켰으며, 척준경이 인종 편으로 돌아서면서 실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