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청평산에 은거해 문수원을 중건한 거사, 호는 청평거사·식암, 시호 진락

| 생몰 | 1061 ~ 1125 |
| 시대 | 고려 중기 |
| 본관 | 인천 이씨 |
이자현(李資玄, 1061~1125)은 고려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거사입니다. 본관은 인천, 자는 진정(眞靖), 호는 식암(息庵)·청평거사(淸平居士)·희이자(希夷子)이고 시호는 진락(眞樂)입니다. 문하시중 이자연의 손자이자 이의(李顗)의 맏아들로, 인예왕후·인경현비·인절현비의 조카이며 이자겸·이자덕·이자의와는 사촌 사이입니다. 1089년(선종 6) 과거에 급제해 대악서승까지 올랐으나 벼슬을 버리고 강원도 춘천의 청평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아버지가 세웠던 보현원을 문수원(文殊院)으로 고쳐 중건하고 당과 암자를 지어 생활하며, 베옷과 나물밥으로 지내며 학문과 선(禪) 수행에 몰두했다고 전합니다. 문벌 출신이었지만 관직에 욕심이 없어, 예종이 다향과 금백을 보내며 여러 차례 불렀으나 모두 사양했습니다. 1117년(예종 12) 예종이 남경에 행차했을 때 잠시 왕을 만났으나 곧 문수원으로 돌아가 평생을 수도 생활로 보냈습니다.
그가 인천 이씨 가문 안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같은 사촌인 이자겸이 권력을 좇아 난을 일으키고, 이자의가 정쟁에 휘말려 목숨을 잃은 것과 대조적으로, 그는 권세의 반대편에서 청정한 은거의 모범으로 후대에 기억되었습니다. 그가 머물던 청평산 일대는 지금의 청평사(춘천) 터로, 그의 묘로 알려진 승탑(부도)이 청평사 인근에 있습니다. 1125년(인종 3) 세상을 떠났으며, 사후 진락(眞樂)의 시호가 내려졌습니다. 이자현의 사례는 같은 가문에서도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공존했음을 보여 주는 자료로 자주 인용됩니다.
1089년 과거에 급제해 대악서승을 지냈으나 관직을 버리고 춘천 청평산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가 세운 보현원을 문수원으로 고쳐 중건하고 베옷과 나물밥으로 수도했습니다.
예종이 다향과 금백을 보내 여러 번 불렀으나 모두 사양했고, 1117년 남경에서 잠시 만났을 뿐입니다.
춘천 청평사 인근의 승탑(부도)이 그의 묘로 알려져 있습니다(위키미디어 사진 설명 기준).
강원도 춘천의 청평산에서 문수원을 중건하고 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