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의 외척, 한산후 왕윤 추대를 꾀하다 숙종 측에 살해된 문신
| 생몰 | 미상 ~ 1095 |
| 시대 | 고려 중기 |
| 본관 | 인천 이씨 |
이자의(李資義, ?~1095)는 고려 중기의 문신이자 외척으로 본관은 인천입니다. 중서령·문하시중을 지낸 이자연의 손자이며 문하시중을 지낸 이정(李頲)의 아들입니다. 사숙왕후의 친정아버지 이석이 그의 숙부이고, 선종의 후궁 원신궁주가 그의 누이이며 이자겸·이자량은 사촌 사이입니다. 이렇게 겹겹이 왕실과 이어진 가계를 배경으로 그는 선종 대에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090년(선종 7) 호부상서로서 송나라에 사은사로 파견되어 이듬해 돌아왔고, 1094년 헌종 즉위년에 지중추원사, 1095년에는 중추원사가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촌 이자겸의 지원을 얻어 세력을 모았다고 합니다. 선종은 숙부 이석의 딸을 왕후로 삼아 헌종을 낳았고, 이자의의 누이 원신궁주는 한산후 왕윤을 낳았습니다. 헌종은 건강이 좋지 않아 모후 사숙왕후가 섭정으로 국사를 대리했습니다.
왕후 소씨에게 아들이 없자 이자의는 이를 기회로 용사를 모아 조카 한산후 왕윤을 즉위시키려고 모의했습니다. 그러나 이 움직임을 알아챈 계림공(훗날 숙종)이 먼저 평장사 소태보에게 알리고 상장군 왕국모를 시켜 시위하게 했고, 이자의는 이를 진압하려다가 왕국모의 부하 고의화에게 암살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숙종이 즉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인천 이씨 내부에서도 같은 외척이면서 어느 왕자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렸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그의 몰락으로 이자겸 가계가 한때 위기를 맞았다가 회복되는 과정도 이 사건과 이어집니다.
이자연의 손자이자 이정의 아들이며, 누이는 선종의 후궁 원신궁주입니다.
헌종이 병약한 틈에 조카 한산후 왕윤을 즉위시키려 했으나 계림공 쪽에 먼저 발각되어 암살되었습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095년 한산후 추대를 꾀하던 중 계림공(숙종) 측의 상장군 왕국모 휘하 고의화에게 암살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