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충선왕 때 첨의정승, 문장공파 파조
| 생몰 | 1252 ~ 1312 |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전의 이씨 |
이혼(李混, 1252~1312)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의(全義)입니다. 초명은 이자분(李子芬), 자는 거화(去華)·일우(一宇)·태초(太初), 호는 몽암(蒙菴)이며 시호는 문장(文莊)입니다. 응양군 대장군 이천(李仟)의 둘째 아들로, 전의 이씨 문장공파의 파조입니다.
1268년(원종 9) 17세로 과거에 급제해 광주참군이 되었고, 국학 학정을 거쳐 충렬왕 때 첨의사인·우부승지, 부지밀직사사, 서북면 도지휘사, 동지밀직사사로 올랐습니다. 1296년 도당에서 당시의 폐단을 바로잡자는 건의를 올렸다가 왕의 총신들의 반발을 사서 그 발의자로 몰려 옥에 갇히고 파직되었으나, 이듬해 지밀직사사 세자원빈으로 다시 기용되었습니다. 이후 서경유수, 밀직사사·전조판서·집현전 대학사, 판밀직사사, 도첨의찬성사를 지냈습니다.
1307년 하정사로 원나라에 가서 그곳에 있던 충선왕과 함께 관제 개혁을 논의했고, 1308년 충선왕이 즉위하자 대사백(大詞伯)에 임명되고 벽상삼한공신에 녹훈되었습니다. 그러나 개혁으로 자리를 잃은 이들의 원망을 받던 중 숙비의 미움을 사서 회주·예주 목사로 밀려났다가, 다시 불려 와 첨의정승으로 치사했습니다. 《고려사》는 그가 너그럽고 후덕했으나 인사를 맡으며 재산을 모았다는 비판과 함께, 아우 이자화를 요직에 앉히려는 왕의 뜻을 사양했다는 일화를 함께 전합니다.
시문에 능해 장단구 몇 편이 세상에 전했고, 영해로 좌천되었을 때 바닷가의 뗏목으로 큰 북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고려사》 악지의 궁중 춤 '무고(舞鼓)' 유래로 전합니다. 그의 계통에서 예안 이씨가 갈라졌는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가 예안백에 봉해져 예안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적고, 다른 자료는 손자 이익이 예안군에 봉해지면서 분적했다고 설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