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민 李俊民

병조판서·좌참찬을 지낸 문신, 남명 조식의 생질, 효익공파 파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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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524 ~ 1590
시대조선 중기
본관전의 이씨

생애 약력

이준민(李俊民, 1524~1590)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시호는 효익(孝翼)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자가 자수(子修), 호가 신암(新菴)으로 적혀 있으나 같은 항목 머리에는 자 성빈(聖彬), 호 회산(晦山)으로도 적혀 있어 자료마다 다릅니다. 이건(李楗)의 증손이고 할아버지는 이정윤(李貞胤), 아버지는 참봉 이공량(李公亮)이며, 어머니가 조언형의 딸이어서 영남의 대학자 남명 조식(曺植)이 그의 외숙입니다.

1549년(명종 4) 식년 문과에 급제해 홍문관 정자가 되었고, 1554년 사간원 정언으로 있으면서 공허한 사장(詞章) 위주의 문풍을 경계하고 경학을 장려하자고 상소했습니다. 1556년 중시에 급제해 홍문관 수찬에 올랐고, 이듬해 사헌부 지평으로 권신 이량에 기대어 윤원형 일파를 몰아냈다는 이유로 반대파의 미움을 받아 영월군수로 좌천되었습니다. 1561년 강릉대도호부사가 되었다가 관할 역에서 일어난 패륜 사건의 책임을 지고 파직되었고, 세자시강원 문학과 강계부사를 지냈습니다.

선조가 즉위하자 좌승지를 지냈고, 1570년 평안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오랫동안 국방을 맡았으며, 경기관찰사·공조참판을 거쳐 1575년 평안도관찰사로 북방을 잘 다스렸습니다. 이어 병조판서·지의금부사·의정부 좌참찬을 지냈는데 특히 국방 문제에 밝았다고 합니다. 동서 붕당이 일어나자 이를 크게 걱정하며 당론을 조정하려던 이이(李珥)를 존경했고, 1584년 이이가 세상을 떠난 뒤 그를 공격하는 이들에게 강하게 맞섰습니다.

천성이 강직해 사리에 맞지 않으면 굽히지 않았고, 늘 검소했으며 자제 교육에 엄했다고 전합니다. 붕당이 심해지자 병을 핑계로 벼슬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진주의 임천서원에 제향되었으며, 그를 파조로 하는 효익공파는 대사성공파 도절제사공 승간파의 지파로 정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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