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의 아들, 인조반정 정사공신으로 공조·형조판서를 지낸 문신 (호 서봉, 시호 충정)

| 생몰 | 1594 ~ 1660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연안 이씨 |
이시방(李時昉, 1594~1660)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연안, 자는 계명(季明), 호는 서봉(西峯), 시호는 충정(忠靖)입니다. 아버지는 연평부원군 이귀, 어머니는 인동 장씨 장민의 딸이며 형은 영의정을 지낸 이시백입니다. 고조부 이수장, 증조부 이기, 조부 이정화로 이어지는 계보가 전하며, 누이 이예순은 김자점의 동생 김자겸의 부인입니다. 인조반정에 참여해 정사공신 2등으로 연성군에 봉해졌고, 이괄의 난 진압에도 가담했습니다.
1625년 서산군수를 시작으로 순검사·광주부사를 거치고 1632년 한성부 좌윤과 우윤, 1636년 나주목사, 1637년 전라도관찰사를 지냈습니다. 정묘호란 때 강화도의 군비를 점검하고 8도의 군량을 관리했으며, 광주와 남한산성 일대의 방호를 맡았다고 합니다. 전라도관찰사로 있을 때에는 군량 보급을 강조하고 입암산성을 쌓았습니다. 1640년에는 귀양에서 풀려난 뒤 제주목사로 임명되었는데, 이 시기 제주에서 광해군을 보호했고 1641년 광해군이 세상을 떠났을 때 염습을 맡았다고 전합니다.
1641년 광주수어사가 되었으나 1644년 심기원의 반역 사건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호조참판으로 복귀했고, 1647년 병조참판을 거쳐 1648년 처음으로 공조판서가 되었습니다. 인조의 능을 만드는 산릉제조와 인목대비의 국장도감·산릉도감 제조를 맡아 장례를 책임졌고, 효종 때 한성부판윤을 지냈습니다. 전라도와 충청도에 대동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현종 즉위 뒤 공조판서로 복귀하여 판금부의사를 겸했으나 1660년 남한산성 개수 작업 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후 영의정에 추존되었고 저서로 『서봉일기』가 언급됩니다. 「이시방 초상」 가운데 관복본 전신상은 보물 제148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보령의 신도비는 보령시 향토문화유산 제9호입니다.
1637년 전라도관찰사로 군량 보급을 강조하며 입암산성을 쌓았고, 1640년 제주목사로 임명되어 제주에서 광해군을 보호했다고 전합니다.
「이시방 초상」 가운데 관복본 전신상은 보물 제1482호로 지정되어 있고, 초상 일괄은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8호입니다.
묘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보령에 신도비가 있어 보령시 향토문화유산 제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자세한 후손 정보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시방 초상 일괄은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귀의 둘째 아들로 인조반정에 가담한 정사공신이며 공조판서를 지냈습니다.
형이 영의정 이시백입니다.
관복본 전신상이 보물 제148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