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문장으로 꼽힌 문신·시인, 호 고담
| 생몰 | 1533 ~ 1592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전의 이씨 |
이순인(李純仁, 1533~1592)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으로 본관은 전의(全義)입니다. 자는 백생(伯生)·백옥(伯玉), 호는 고담(孤潭)이며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현령 이홍(李弘), 어머니는 죽산 박씨로 생원 박함의 딸입니다.
처음에 이중호의 문하에서 공부하다가 뒤에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에게 배워 성리학을 연구했습니다. 율곡 이이, 우계 성혼, 구봉 송익필 등과 교유했고, 문장에 뛰어나 이이·송익필·이산해·최경창·백광훈·최립 등과 함께 '팔문장(八文章)'으로 불렸습니다. 이달·백광훈·최경창 등 삼당시인과 어울리며 당시풍(唐詩風)을 추구해, 우리 한시사에서 당시풍의 선구자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후손이 쓴 행장에 따르면 이황은 그를 두고 '학문에 독실함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 했고, 성혼은 '한 시대의 맑은 선비'라 평했다고 합니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합격하고 1572년(선조 5) 별시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 정자·예문관 검열을 지냈습니다. 선조가 병환 중에 궁중에서 불사(佛事)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유생들과 함께 정업원을 없애자고 상소했습니다. 성균관·사헌부·홍문관의 청요직을 거쳐 사간에 올랐으나 재상의 뜻을 거슬러 물러났고, 1583년 종부시정·직제학을 지내다 탄핵으로 물러났습니다. 1586년 다시 사간이 되어 부승지·형조참의·승문원 제조를 지냈고, 동지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도승지 임명은 사양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예조참의로 선조를 호종했고, 왕명으로 중전과 동궁을 모시고 성천에 이르렀다가 과로로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전릉군에 봉해졌으며, 1613년 위성공신 3등에 녹훈되었습니다. 문집으로 《고담집》이 있고, 1891년 10대손 진옥·진기 등이 펴낸 《고담일고》가 규장각에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