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곤강 尹崑崗

시인·국문학자, 시집 《빙하》·《동물시집》·《살어리》와 시론집 《시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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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911 ~ 1949
시대일제강점기~광복 직후
본관칠원 윤씨

생애 약력

윤곤강(尹崑崗, 1911~1949)은 일제강점기에서 광복 직후에 활동한 시인으로, 한국어 위키백과는 그를 칠원 윤씨 분류에 두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본관이 직접 적혀 있지 않으므로 분류에 근거한 것임을 밝혀 둡니다. 1911년 9월 22일 충청남도 서산군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1930년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혜화전문학교를 중퇴했습니다. 1935년 가을 일본 센슈대학 법철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36년 동인지 『시학』의 동인으로 문단에 등장했습니다. 초기에는 카프(KAPF) 계열의 시를 썼으나 이후 어둡고 퇴폐적인 시풍으로 바뀌었다고 평가됩니다.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충남 해미면의 면서기로 일하며 풍자적인 시를 썼고, 광복 후에는 면서기직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와 전통적 정서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시집으로 『빙하』, 『동물시집』, 『살어리』가 있고, 시론집으로 『시와 진실』이 있습니다.

광복 후에는 보성중학교·보성고등학교의 한문 교사, 동국대학교 강사,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성균관대학교 강사 등을 지내며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1949년 2월 23일 세상을 떠났으니 38세였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짧은 생애 동안 사상적 시에서 풍자시, 고전 정서의 시까지 변화를 거듭해, 한국 근대시가 식민지의 억압과 광복 직후 혼란 속에서 걸은 방향을 한 시인의 궤적으로 보여 줍니다.

시풍의 변화

윤곤강은 초기에는 카프 계열의 사상적 시를 썼으나 점차 어둡고 퇴폐적인 정서를 띠었고, 1943~1945년 면서기 시절에는 풍자적인 시를 썼다고 합니다. 광복 뒤에는 전통적 정서에 관심을 두어 고전 시가 「살어리」의 이름을 딴 시집을 냈습니다. 이렇게 시풍이 시대에 따라 크게 바뀐 것은 식민지 시기 지식인 시인의 곤경과 모색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교육자로서

광복 후에는 보성중·고교 한문 교사, 동국대 강사,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성균관대 강사로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시론집 『시와 진실』과 『시학』 동인 활동은 그가 창작과 비평을 함께 한 시인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같은 칠원 윤씨 안에서도 윤이상과 함께 예술 분야에서 이름을 남긴 인물로 소개됩니다.

묘소

묘소의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윤곤강 자주 묻는 질문

윤곤강의 본관은 어디인가요?

칠원 윤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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