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자당 尹子當

조선 초 문신, 박포의 난 진압의 공으로 좌명공신에 올라 칠원부원군에 봉해진 좌찬성, 시호 정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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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422
시대조선 초기
본관칠원 윤씨

생애 약력

윤자당(尹子當, ?~1422)은 고려 말에서 조선 전기에 활동한 문신으로 본관은 칠원입니다. 고려 말 문하시중을 지낸 윤환의 조카이며, 칠성부원군에 추증된 윤공의 아들로 전해집니다. 윤공은 칠원 윤씨 부원군파의 파조로 꼽힙니다. 시호는 정평(靖平)이고, 한국어 위키백과는 그를 칠원 윤씨 인물로 분류합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고, 어머니 영양 남씨는 안성 사람 이경과 재혼해 이방원의 측근이 되는 이숙번을 낳았으므로 이숙번은 이부(異父) 동생이 됩니다. 친동생 윤자량은 뒤에 대제학을 지냈습니다. 윤자당은 이방원의 측근이 되어 조선 건국에 참여했고, 1394년(태조 3) 문과에 급제해 여러 벼슬을 거친 뒤 정종 때 병조전서에 올랐습니다.

병조전서로 있으면서 이방원과 내통해 박포의 난 토벌에 공을 세우고 태종 즉위를 도운 공으로 추충분의익대좌명공신에 녹훈되었으며, 좌찬성에 이르러 칠원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사신으로 명나라에 갔을 때 황제가 그 인품을 높이 사 금자광록대부의 품계를 내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년에는 은퇴해 지내다가 1422년(세종 4) 7월 경기도 안성에서 세상을 떠났고, 세종이 3일 동안 정사를 중단했다고 전합니다.

이부 동생 이숙번과의 인연

윤자당의 가족사는 성현의 『용재총화』에 일화로 전합니다. 일곱 살 때 어머니를 따라 무당에게 운명을 물었더니 "귀한 상이나 반드시 동생의 힘으로 귀하게 될 것"이라 했고, 과부였던 어머니가 이경에게 재가해 낳은 아들이 바로 재상 이숙번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설화적 성격이 강하므로 사실과는 구분해 읽어야 하지만, 이방원의 측근 이숙번과의 관계가 출세에 영향을 주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좌명공신과 칠원부원군

1394년 문과에 급제한 뒤 병조전서에 올랐고, 박포의 난을 토벌하고 태종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추충분의익대좌명공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태종이 공신 서책(철권)을 내리며 "황하가 변함없이 흐르고 태산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안락과 근심을 함께하자"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같은 칠원 윤씨의 윤저 역시 좌명공신이었습니다.

묘소

묘는 상포 선영(칠원 윤씨 선영) 좌측 산줄기에 모셔졌다고 위키백과에 적혀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손

아버지 윤공은 부원군파의 파조, 친동생은 대제학 윤자량이며 이부동생은 이숙번입니다.

윤자당 자주 묻는 질문

윤자당의 본관은 어디인가요?

칠원 윤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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