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림대군(효종)의 사부, 공주 지역 서원 건립을 이끈 학자, 효행으로 정려를 받음
| 생몰 | 1614 ~ 1692 |
| 시대 | 조선 중기~후기 |
| 본관 | 칠원 윤씨 |
윤빈(尹彬, 1614~1692)은 조선 중기에서 후기에 걸쳐 충남 공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학자로 본관은 칠원, 고려 문하시중 충효공 윤환의 후손입니다. 충남 청양군 목면 화양리에서 윤수의 아들로 태어나, 임진왜란 때 호종공신이던 숙부 윤건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공주목사 정유순의 딸 동래 정씨와 혼인해 아들 형일·형재를 두었고, 아들 대에 청양에서 탄천면으로 옮겨 산 것으로 보입니다.
인조 때 봉림대군, 곧 훗날의 효종의 사부를 지냈습니다. 1650년(효종 1) 진소(陳疏)와 『서전강목』·『주자주차』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길에 관한 글을 모아 『고감록(古鑑錄)』을 지어 효종에게 올렸습니다. 임금은 이를 교훈으로 삼아 잊지 않겠다며 가상히 여겨 호피를 내렸다고 전합니다. 이렇게 스승이 제자였던 왕에게 올린 책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큽니다.
지방 교육에도 힘을 쏟아 공주 충현서원(충남 최초의 서원)의 원장을 지냈고, 1628년 황신을 모시는 창강서원 건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1634년 돈암서원 건립에는 공주 지역 대표 4인 가운데 하나로 참여해 돈암서원 문인록에 이름이 올랐습니다. 효행도 뛰어나 1725년(영조 1) 명정과 쌀 100석이 내려졌고, 탄천면 송학리에 세워진 윤빈 정려는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1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692년에 세상을 떠났고, 묘는 청양군 청남면 중산리에 있다고 합니다.
『고감록(古鑑錄)』은 옛일을 거울삼아 다스림의 길을 밝히려는 뜻으로 엮은 글 모음입니다. 윤빈은 1650년 진소와 함께 이 책을 올렸고, 효종이 호피를 내렸다고 전합니다. 어린 시절의 사부가 즉위한 제자에게 치도(治道)를 권한 모습이어서, 개인의 학문이 국왕에게 닿은 드문 장면으로 소개됩니다.
윤빈은 충현서원·창강서원·돈암서원 등 충청 지역 서원의 건립과 운영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효행으로 내려진 윤빈 정려는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11호입니다. 윤빈의 사례는 칠원 윤씨가 경남 함안뿐 아니라 충남 청양·공주 일대에서 학문과 효행으로 뿌리내렸음을 보여 줍니다. 같은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로 윤병일과 윤병구가 있습니다.
충남 청양군 청남면 중산리에 안장되었다고 전합니다.
아들 윤형일·윤형재.
칠원 윤씨입니다.